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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라고? 누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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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라고? 누가 그래?"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02.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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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은 천주교와 완전히 결별했다."

2004년 6월 초부터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칼럼을 통해 오늘날 귀감이 될 만한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생각이나 정신을 세상에 소개해온 박석무(70)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주장이다.

박 이사장은 6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700회 기념 칼럼에서 "700회 기념으로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운을 뗀 뒤 "최근에 '역사스페셜'이라는 프로를 시청하다가 다산의 천주교 신자 여부에 대하여 불확실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더구나 다산의 큰 아들인 유산 정학연이 말년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 것을 보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박 이사장은 '실학파와 정다산'(최익환 지음) 288쪽에 수록된 '제사문제를 계기로 정약용·이가환 일파가 종교와 과학을 혼동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교회와 단연히 결별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영한 것인가? 단순히 배타적이며 피화적인 행동으로 규정할 수 없다. 다산은 공예와 기술은 외국으로부터 배워야 하지만 도덕과 의리는 자주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의 소위 서학에 대한 자기 비판적 태도를 표명한 것이었으며 이 사상을 계승한 '내수외학'의 표어는 민족의 자주 발전을 위한 개화운동에서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였다'는 대목을 먼저 제시했다.

그러면서 "서양의 과학기술과 서양의 도인 천주교를 분명히 구별해 도는 우리 동양, 즉 조선의 유교를 신봉(내수)하고 천주교는 반대했으며, 과학기술은 밖에서 배운다(외학)는 뜻을 천명했다"면서 "천주교를 신봉했다면 다산의 논리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500권이 넘는 다산의 저서 어디에 천주교 신자의 낌새가 나타난 부분이 있는가. 정학연이 신자였다는 엉뚱한 주장은 어떤 이유에서 연유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사실을 모르는 분들, 다산탄생 250주년인 금년부터라도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 다산을 제대로 발견해 달라"고 청했다.

더불어 "(다산이) 천주교에 빠졌던 한 때가 있었으나 제사문제를 계기로 천주교와는 완전히 결별했음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밝힌다"면서 "자신의 글에서 그렇게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어떤 자료로 그의 주장을 뒤엎을 방법이 있겠는가. 다산 자신의 주장을 믿어야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르게 해석됨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2일 KBS 1TV '역사스페셜'은 정약용의 배교 논란을 다룬 '정약용 3형제, 과연 신을 버렸나?' 편을 방송했다. 세례명이 '사도 요한'으로 천주교 초기 신자였던 정약용이 신유박해(1801) 직전 배교하고, 신유박해로 전남 강진으로 유배된 뒤에는 천주교에 입교한 사실을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정약용이 유배 이후 천주교를 계속 믿었을 뿐 아니라 관련 서적을 남겼고, 아들 정학연도 훗날 천주교 신앙을 가졌다는 가톨릭계의 주장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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