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을 동원한 외부세력이 정당에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고 소액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기탁금제도가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탁금제도란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 선관위에 정치자금을 맡기면 선관위가 정치자금을 국고보조금 배분율(기본비율+의석수비율+득표수비율)에 따라 각 정당의 중앙당에 배분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내용의 기탁금제도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모금 규모나 기부자 수 면에서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는 듯하다.
동의대 전용주 교수가 최근 중앙선관위 주최 '정책정당 실현을 위한 정책연구소의 역할과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5년에 20억여원에 그쳤던 기탁금은 2011년에 86억5700만원까지 늘었다. 중앙선관위에 기부금을 기탁한 기부자 수도 2005년 2만2000여명에서 2011년에는 4배에 가까운 9만7000여명까지 늘었다.
이에 따라 기탁금은 정당의 수입에서도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기화 중앙선관위 정당과장이 발표한 지난해 1년간 정당의 수입·지출상황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수입에서 기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9%, 민주당 수입에서 기탁금의 비중은 2.8%, 통합진보당 수입에서 기탁금의 비중은 2.4%였다.
문제는 기탁금이 정당정치를 돕기 위한 차원에서 기부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세액공제 혜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도별 모금액수의 90% 이상이 주로 4분기(10월1일~12월 31일)에 집중돼있다는 점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9년의 경우 기탁금 총 모금액수 78억3000여만원 중 97% 정도인 75억6000여만원이 4분기에 기부됐다. 분기별 기탁금 기부자 수 역시 같은 경향을 나타냈다. 연간 기부자 수의 90%이상이 4분기에 기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대 총선이 열렸던 2008년 당시 기탁금 기부자 수를 보면 이 같은 경향을 재확인할 수 있다. 당시 선거가 4월9일 실시됐지만 선거를 전후로 한 1분기와 2분기 기탁금 기부는 오히려 줄어든 반면 97%가량이 4분기에 기부됐다.
기부자별 평균 기탁금 액수 역시 세액공제 목적의 기부임을 짐작케 한다.
1인당 평균 기탁금액은 2005년 8만9500원, 2006년 9만1500원, 2007년 8만7700원, 2008년 8만8500원, 2009년 8만8800원, 2010년 8만8500원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2010년의 경우 10만원 이하 소액기부자가 전체의 99.7%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세액공제 금액 한도가 1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현황은 정치발전을 위한 소액기부문화의 정착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세액공제 목적의 기탁으로 보는 쪽이 합당하다는 게 전용주 교수의 설명이다.
비자발적인 기탁금 기부가 횡행하고 있는 점 역시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전 교수에 따르면 기탁금의 상당 부분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기부되고 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해 모금한 다음 이를 선관위에 기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광주 선관위에서 모금된 기탁금 2억3000여만원 중 84.2%인 1억9500여만원이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시교육청에 의해 기부됐다. 나머지 2300여만원 역시 광주지역 농협에서 기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과에 전 교수는 "개인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선관위에 기탁하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기부대상을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기부자들이 기탁금 기부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동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기탁금제도도 정치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이끌어내고 유권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북대 엄기홍 교수도 "기탁금제도는 기탁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납부동기 형성이 어렵다"며 "2005년 이후의 기탁금 자료를 살펴보면 기탁금은 증가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기보다는 세액공제나 자발적이지 않은 기부에 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도 제시됐다.
전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 모금과 조달의 주체로서 정당 후원회를 부활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정치자금모금단체 설립 허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완전 공개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정치자금 모금과 지출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전자화해 기한 제한 없이 상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