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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100일]규제완화... "손톱밑 가시보다 대못부터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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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100일]규제완화... "손톱밑 가시보다 대못부터 뽑아야"
  • 이원환기자
  • 승인 2013.05.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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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못 건드리고, 곁가지만 흔든다"... 회의적인 시선 짙어져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편견과 과도한 가사·육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네일숍 여는데 왜 헤어 미용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상속세 부담이 너무 큽니다. 줄여주세요."

지난 달 중소기업중앙회에 모인 중소기업 관계자와 소상공인들이 '너무 불합리하다'며 쏟아낸 불평들이다. 속칭 '손톱 밑 가시'의 대표적인 사례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줄곧 강조한 것은 '규제완화'.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계는 재벌규제 등 거창한 경제민주화 담론 대신 소소하지만 중소·소상공인에게는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들을 거론했다. 이른바 '3불(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 시장의 불균형)'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것.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손톱 밑 가시'라는 문구로 정리의지를 표명했다.

어느덧 새 정부 100일.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성과가 일부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핵심은 그대로 놔두고 곁가지만 손본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있다.

◇'자본력+대기업 상생의지 결핍=시장 불균형'


'3불'은 중소·소상공인이 단지 약자라서 겪는 설움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산업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더 이상 덮어두기 힘들 정도'까지 치달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난 십여년간 중소기업은 30만개 이상이 증가했고, 반면 대기업은 거의 10분의 1로 급감했다"며 "이러다 보니 제한된 납품처를 두고 중소기업간 경쟁간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비례해 3불의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항상 '을'.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 거래의 불공정이다. 중소 협력업체들은 대기업과 거래관계를 텃다는 기쁨도 잠시, 매해 이뤄지는 납품단가 인하 통보와 비용전가, 기술과 인력 빼가기, 서면계약 미체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공정 관행들에 직면하게 된다.

시장의 불균형은 자본의 차이와 대기업의 상생의지 결핍에서 비롯된 문제가 대부분이다. 대형마트와 제과제빵을 필두로 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 대표적이다. 소상공인들의 시정 요구가 빗발치면서 적합업종 지정이 논의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중소·소상공인이 각종 기관에서 받는 차별대우도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 거래다.

대출 자체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대출을 받더라도 경기 둔화시 대출 회수 1순위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향해 아무리 중소소상공인 대출을 늘리라고 하지만 은행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시늉만 낼 뿐이다.

◇"정부 의지는 알겠지만... 더 크고, 급한 것 많아"


정부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손톱 밑 가시(불합리한 규제·제도)' 제거 작업에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의 영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130건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산업디자인 전문업체의 등록요건을 완화하고, 법인 차량의 등록변경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는 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로 여겨졌던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통과, 이 법안이 실현되면 기업들이 그동안 미뤄왔던 증축 투자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아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기아차가 1970년 11월 착공한 광명 소하리공장은 이듬해 7월 소하리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소하리 공장은 지난해 최대 2856억원 규모의 증설을 계획했지만, 1840억원의 개발제한구역보전 부담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고 투자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규제완화의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지만, '몸통은 놔두고 잔가시만 뽑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섞인 목소리도 높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업승계다. 새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책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가업승계와 관련된 세제 지원책은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계의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은 1997년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그간 공제한도도 1억원에서 300억원으로 확대됐고, 대상기업의 연 매출액 상한도 1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엔 여전히 '가혹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상속세 공제를 받기 위해 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박종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속세가 정부의 조세수입 중 1%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현행 가업상속제도는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설사 상속세를 전액 면제한다고 해도 기업의 성장성을 고려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근로자소득세 등으로 일회성인 상속세 징수액 보다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증 해소보다 체질개선에 주력해야'


규제완화가 답인가.

전문가들은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나왔던 것이 투자촉진이며 규제완화라고 지적한다.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우리 경제 여건에서 풀 수 있는 규제는 거의 안 건드려 본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재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규제완화의 핵심은 주로 기업소유지배구조 및 경영권승계, 공정거래, 금산분리 등과 관련한 규제들이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를 살리겠다며 이들 규제도 철폐하거나 많이 무력화시켰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기업투자가 크게 늘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근본적 개혁과 체질개선이 급선무라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조 교수는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도 필요하고 부동산 연착륙 대책도 좋다. 그러나 이 대책들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 대책들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제활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 될 수 있다"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지, 규제완화에 대한 확실한 해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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