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를 설립하거나 주주로 참여한 한국 기업인 명단이 27일 추가로 공개됐다. 명단 속의 기업인들은 대부분 국내 대기업의 오너이거나 임원 출신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뉴스타파가 발표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인은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조용민 전 한진해운 홀딩스 대표이사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 증권 대표이사 부회장 ▲김영혜(조 전 부회장의 부인)씨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 폴란드 차 사장 등 7명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최은영 회장과 조용민 전 대표이사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 와이드 게이트 그룹(WIDE GATE GROUP LIMITED)의 주식을 각각 90%와 10%씩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은 1996년 쿡아일랜드에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Five Star Aku Trust)'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02년 연결회사를 통해 한화그룹 일본 현지법인에 주택 2채를 매각하는 등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민호 전 SK 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은 1996년 버진아일랜드의 크로스브룩 인코퍼레이션(Crossbrook Inc.)의 등기이사로 올라 있고 부인인 김영혜씨는 이 법인 주주로 등재돼 있다. 김씨는 2003년 10월 익명주주로부터 주식을 취득했다.
이 밖에도 이덕규 전 대우 인터내셔널 이사는 2005년 버진 아일랜드에 콘투어 퍼시픽(CONTOUR PACIFIC LIMITED)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고, 유춘식 전 대우 폴란드 차 사장은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선 웨이브 매니지먼트(SUN WAVE MANAGEMENT LIMITED)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명단에 등장하는 페이퍼컴퍼니들은 한진해운, 한화, SK, 대우인터내셔널 등 4개 기업이 관계 당국에 설립 신고를 한 적 없는 법인이다.
앞서 뉴스타파가 지난 22일 발표했던 이수영 OCI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부부, 조욱래 DSDL 회장 부자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법인들은 기업 오너나 임원 개인이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어 역외탈세나 비자금 조성 등을 위한 목적이 아닌지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해당 그룹은 '회사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진해운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현재 (관련 내용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만 밝혔다.
SK그룹은 "조 전 부회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주식을 취득한 것으로 안다"며 "조 전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 회사를 그만 뒀고 현재 회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법인"이라며 "관련 자료가 전혀 없고 그 법인과 자금 거래를 했던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한화그룹은 2002년 일본 현지 법인인 한화재팬이 페이퍼컴퍼니로부터 콘도 2채를 인수한 것에 대해 인정했다.
다만 한화그룹은 "필요한 세금은 다 냈고, 구매 금액도 다 확인했다"며 "세금 탈루를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기업이 합법적인 절세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개된 자료만 가지고는 합법적으로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탈세 목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기업 내부 자료를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업인들의 역외탈세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지은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간사는 "기업들이 페이퍼컴퍼니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면 기업인이 개인 재산을 은닉하거나 탈세를 하기 위해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이 당국에 신고를 했는지, 재산을 은닉하려고 한 것인지, 비자금인지에 대해 조세 당국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