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수 기업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00일 동안 각종 노동관련 규제 입법으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노동 이슈로 옮아가면서 정년연장, 경영상 해고제한 요건강화, 청년고용의무할당제 등 고용안정을 위한 법안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만큼 기업들이 치러야 할 '경영 비용'이 늘어났거나 조만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급변한 것.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는 모든 기업에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년연장법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부터, 정부와 지자체 및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해야 한다.
공공기관 총 정원의 3%를 만 29세 이하 청년들로 뽑는 내용의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민간부문에 청년 고용을 강제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업의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6월 임시국회의 최대 현안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정리해고 조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범위를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고용부는 2017년까지 매년 47만6000개씩 모두 23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15∼64세 고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
경제계는 각종 노동관련 규제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제계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정년연장 의무화 등 노동법안은 단순히 포퓰리즘을 넘어 우리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 노동관련 법안들은 대부분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것들이어서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에 책임을 묻기 애매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입법 중인 노동정책들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라기보다 국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어서 '정부 출범 100일'을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정확한 로드맵이 제시된 후에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제부처 장관들은 무리한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 비판하며 정치권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경총 포럼 강연에서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해치는 그런 법안은 정부로서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경제민주화는 국민적인 컨센서스를 통해 국민경제의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19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정당한 활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제로 의미가 굳어졌다고 본다"며 "즉 불공정 행태나 기득권 또는 권한 남용 등을 통해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창출하거나 이익을 뺏어가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의 엇박자 속에도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사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자발적인 '상생경영'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각종 규제 입법 움직임에 대해 재계 스스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선제적으로 수용하는 모습.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의 속내는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들에 대해서 만큼은 정치권도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달라는 간접적인 요청인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금부터는 정부가 보다 확실한 사인을 보내줄 필요가 있다"며 "정치권이 추진 중인 각종 노동입법에 대해 정부의 입장이 확인되지 않는 한 기업들의 눈치보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