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나흘 만에 검찰에 다시 불려나왔다.
다만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이지만 전직 고위공직자로서의 책임감 있는 모습보다는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취재진을 또 한 번 외면해 씁쓸함을 남겼다.
김 전 청장은 25일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35분까지 12시간 넘게 강도 높은 밤샘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예상외로 미소를 띤 밝은 표정으로 검찰청사를 걸어 나온 그는 취재진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목이 아파서 말을 못 하겠다"며 당초 약속과는 달리 그대로 지나쳤다.
이에 취재진이 '증거인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수사 외압)혐의를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자 "성실히 조사받았다"고 짧게 대답한 뒤 서둘러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날 김 전 청장의 소환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김 전 청장이 뭔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돌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이 댓글 관련 키워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개입해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수사 지휘 라인에 있는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 A경감이 검찰의 압수수색 전 '디가우징' 방법으로 데이터를 삭제해 증거인멸 논란과 함께 김 전 청장과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이제기됐다.
특히 통상적으로 검찰이 경찰조직의 수장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한 전례가 드물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2차조사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아 김 전 청장이 현 상황에 대한 심경 정도는 밝힐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에도 김 전 청장은 '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질문조차 받지 않고 쫓기듯 취재진을 뿌리치며 검찰청사를 빠져 나갔다.
장시간에 걸쳐 밤샘 조사를 받은 탓에 심신이 피곤했을 수 있지만 부실수사 논란을 자초한 경찰 지휘부의 가장 큰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핵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 사과 한 마디 없이 자리를 뜬 것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지적된다.
앞서 김 전 청장은 지난 21일 1차 소환에서도 취재진에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당시 김 전 청장은 실제 조사 시간은 13시간이었지만 조사를 마친 직후 변호사와 함께 6시간20여분 동안 조서 열람과 진술 수정 요청을 반복하는 바람에 귀가 시간이 훨씬 지체됐다.
그는 1차 소환 당시에도 조사를 마친 뒤 '중간 수사발표가 적절했느냐', '각종 의혹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히 조사해 임했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청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