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진범을 잡아달라고 미국 백악관에 호소한 중국 여대생 독극물 살해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사건 담당 기관인 베이징 공안국이 8일(현지시간) 중요한 증거 인멸로 해당 사건의 수사와 진실 해명은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가운데 중국 관영 언론이 사설을 통해 "당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만이 뒤늦게라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주링(朱令)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여론에 오르내린 지 한 달여 만에 이날 베이징 공안국은 공식 웨이보 '핑안베이징(平安北京)'을 이용해 수사 불가의 입장을 밝혔다.
당국은 또 피해자 본인과 그 가족이 받은 고통에 깊은 이해와 동정을 보내며 사회복지 기관과 협력해 치료 비용을 면제받거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공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명문 칭화대 화학과에 다니던 여대생 주링은 지난 1994년과 1995년 독극물인 탈륨에 두 차례나 중독됐다.
탈륨은 일반인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화학 물질로 당시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같은 과 동기인 쑨웨이(孫維·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유력한 집안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 쑨웨이는 사법부가 사건 수사를 흐지부지 마무리한 가운데 신분을 세탁하고 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쑨웨이의 할아버지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젊고 아름답던 명문 여대생이었던 주링은 전신이 마비됐을 뿐 아니라 시력을 거의 상실하고 지능도 어린 아이 수준으로 낮아진 40대 장애인이 됐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해외 언론의 주목까지 받게 됐다. 미 백악관의 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에 8일까지 '주링 사건'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청원 서명이 13만 건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 중국어판은 "이 사건은 중국인의 절망적인 심정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한 국가(a국)의 국민이 자국 지도자가 적국으로 평가하는 다른 한 국가(b국)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선례가 없는 사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9일 사설을 통해 당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만이 법률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고, 정부의 공신력을 높일 수 있으며 국민이 사법체계 속에서 공평과 정의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
20년 가까이 된 세월이 지난 뒤 사건 재수사는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지만 당국의 진실 규명 노력과 피해자 가족과 대중에 대한 정보 공개만이 증폭되는 의혹과 소문을 줄이는 '해독약'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