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았으나 실형을 면하진 못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윤성원)는 1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에게 1심 선고를 깨고 징역 3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화그룹 계열사들로 하여금 위장 계열사 한유통, 웰롭 등에 9000억원 상당의 부당지원을 하도록 한 혐의(업무상 배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부평판지 인수와 관련된 배임 혐의는 무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적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합리적인 대책 없이 위장계열사를 대규모로 지원한 것은 합리적인 경영판단으로 볼 수 없다"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 구조조정에 성공했더라도 위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계열사들에 실질적인 손해를 입히진 않았지만 업무상 배임 행위로 인한 위험성은 수천억원에 이른다"며 "부동산 등 내부거래로 인한 계열사들의 피해액이 1660억여원에 달하는 점 등을 볼 때 책임에 상응하는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와 누나의 이익을 위해 동일석유 주식을 저가 매각해 계열사들에게 133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힌 혐의 등은 1심과 같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던 임금지급 관련 업무상 횡령 혐의도 그대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경영상 위법행위에 대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훼손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엄하게 꾸짖으면서도, 피해 계열사들에 대한 회복 조치가 이뤄진 점 등을 사유로 들어 1심보다 형량을 낮췄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경우 기업주가 회사의 자산을 개인적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이 아니다"라며 "피해 회사들에 대한 변상을 하기 위해 피해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186억원을 자기 재산으로 공탁했고 포탈한 세금도 납부한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일 열린 결심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간이침대에 누운 채 산소 호흡기를 꽂고 법정에 나왔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는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다음달 7일 오후 2시까지로 예정된 구속집행정지는 유지키로 했다. 만약 김 회장이 상고해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하면 대법원에서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한화 측은 항소심 선고 직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변호인과 함께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 회장은 위장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등을 통해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김 회장은 우울증과 패혈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 등으로 지난 1월 법원에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석방돼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김 회장에게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모든 잘못은 내 불찰로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며 "전문 경영인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간청한다"며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한편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로 기소된 홍동욱 여천NCC 대표에게는 징역 4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1심과 달리 징역 3년에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 부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그대로 유죄가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