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국회에서 대선공약을 넘어선 수준의 강력한 대기업 규제법안이 일부 논의되는 것과 관련,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경제민주화 속도조절에 나서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부가 추경(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들 정도로 경기가 침체된 마당에 과도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민간부문의 돈줄을 쥐고 있는 기업들의 투자가 막히는 '엇박자'를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상임위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여야 간에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대선과정에서부터 강력한 경제민주화 드라이브를 걸었던 박 대통령이기에 이같은 발언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고강도 재벌개혁 조치를 제외한 공약발표와 경제성장에 보다 무게를 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을 거치면서 주변에서 속도조절 내지 후퇴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관련 논의에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한 적은 없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회 정무위원회가 추진중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대기업 계열사 간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무죄 입증책임을 기업이 지도록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내부거래의 부당성을 입증해야 했던 기존의 법안을 정반대로 뒤집은 셈인데 재계는 '대기업 옥죄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인수위가 마련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금지규정 강화와 부당 내부거래 적발시 부당이익 환수가 골자로 정무위가 마련한 개정안에 비해 수위가 훨씬 낮다.
박 대통령도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그동안 수차례 "경제력 남용 등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되 국제 경쟁력과 대규모 투자 등 대기업이 가진 장점까지 놓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초 생각보다도 (공정거래법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앞서 나간 측면이 있으니까 부처들이 중심이나 균형을 잡아달라는 의미인 동시에 '제 본뜻은 그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즉 박 대통령이 기업들에게 '경제민주화를 위해 과도한 규제를 만들지는 않을테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는 일종의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기업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추경을 해도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경기회복에 한계가 있다"며 기업투자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투자활성화를 위해 정부규제를 포지티브(positive)에서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개선토록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규제의 네거티브 방식이란 '할 수 없는 일'만 나열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는 포지티브 방식보다 개인이나 기업이 받아야 할 인·허가 등의 절차가 훨씬 줄어들게 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이 경제민주화에 어긋나는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미래성장동력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푸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이것이 경제민주화와 상충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성실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적극 밀어주고 뒷받침하고 격려하는 것이지 자꾸 누르는 것이 경제민주화나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추경의 4월 임시국회 통과에 주력하는 한편 기업투자의 측면지원에도 역점을 둬 경제회복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추경과 부동산 대책은 경제회복을 위한 투자로 일종의 '마중물' 같은 개념"이라며 "마중물을 쏟아 부은 후에는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시켜 경제회복의 수순을 밟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 경제민주화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앞으로도 정부는 경제민주화 관련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들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관련 발언 취지는 경제민주화는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그 추진과정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제약하는 일은없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그동안 제시한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시정한다'는 경제민주화 추진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사항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