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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들, 경영난에 공짜 스프링클러도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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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들, 경영난에 공짜 스프링클러도 거부
  • 이교엽 기자
  • 승인 2019.10.2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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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시설 설치에 돈 들일 여유 없어”
▲ 화재로 처참해진 고시원 내부.

서울시에 따르면 방마다 자동물뿌리개가 설치되지 않은 낡은 고시원은 서울시내에만 822곳이다. 시내 고시원 5800여곳 중 약 14%가 돌발 화재에 무방비 상태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내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총 228건)로 인한 사망자는 8명, 부상자는 29명이다. 

이 중 자동물뿌리개가 없었던 국일고시원에서만 사망자 7명, 부상자 11명이 발생했다.

국일고시원처럼 자동물뿌리개가 없는 고시원들은 2009년 7월 이전에 설립된 업소들이다. 

2009년 7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돼 그 이후부터 세워진 고시원들은 자동물뿌리개 설치가 의무화돼있지만 그 이전 고시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2009년 7월 이전 설립된 고시원에도 자동물뿌리개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설치를 유도하자는 특별법 개정안이 3건 발의됐지만 이 법안들은 1년 가까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법 개정을 기다리다 지친 서울시는 자동물뿌리개 설치 지원사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낡은 고시원에 ‘3~5년간 입실료 동결’을 조건으로 자동물뿌리개 설치비를 전액 지원해왔다. 고시원장들의 자부담을 없애는 동시에 입실료 상승을 방지해 취약계층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제안이었다.

올해 8월에는 입실료 동결을 꺼리는 고시원장들을 위한 추가 대책이 나왔다. 시는 국비·시비·자부담 1대1대1 원칙에 따라 할인된 가격에 자동물뿌리개를 설치해준다. 

이로써 고시원장들은 ‘입실료 동결조건이 있는 서울시 전액 지원’ 방식과 ‘일부 자부담이 있지만 입실료 동결조건이 없는 지원’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일부 성과가 있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62억원을 들여 모두 350여개 고시원에 자동물뿌리개를 설치해줬다. 

하지만 여전히 800여개에 이르는 고시원에 자동물뿌리개가 설치되지 않았을 정도로 사업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영난이다. 고시원 영업이 부진한 마당에 소방시설 설치에 돈을 들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불경기로 공실이 늘어나는데 입실료를 동결할 여유도 없고 자동물뿌리개 설치에 공간을 할애할 여력도 없다고 고시원장들은 호소한다.

지원대상 고시원을 물색하는 일선 소방서 관계자는 “사법고시가 있을 때는 고시원이 돈을 벌었는데 고시제도가 없어지면서 적자를 보고 있다”며 “국비가 지원돼도 자기 부담이 있기 때문에 경영이 어려운 고시원이 국가에서 하라고 한다고 해서 설치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자동물뿌리개를 설치할 경우 방 1개를 관련 설비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는 점 역시 고시원장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한 고시원장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되면 공사기간 중에 소음이나 먼지 때문에 입소생들이 퇴실해서 고시원 수입이 한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며 “또 스프링클러 약제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 방이 한두개 없어질 수 있다. 그러니 수입이 줄어드느니 차라리 안 하고 만다는 분들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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