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의 ‘맛있는 집’
옛부터 ‘봄 주꾸미’라는 말이 있다. 주꾸미는 3~5월 산란기를 맞아 살이 더욱 쫄깃쫄깃해지고, 맛도 훨씬 고소해지기 때문이다. 산란기인 만큼 암컷 뱃속에는 알이 가득하다.
주꾸미는 건강에도 좋다. 칼로리는 낮고,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두뇌 발달과 성인병 예방에 좋다는 DHA를 함유하고 있다. 오징어와 마찬가지로 타우린 성분이 아주 풍부해 간 해독기능 강화, 혈중 콜레스테롤 저감, 근육 피로회복 등에 좋다. 항암 작용을 하고 소화기능 향상도 돕는다.
마음 같아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는 서해안으로 달려 가고 싶지만 좀처럼 짬을 낼 수 없다. 그 사이 충남 서천의 ‘2012 동백꽃 주꾸미 축제’는 6일에 끝났고, ‘제4회 태안 몽산포항 주꾸미 축제’가 시작되는 21일까지 기다려야 할 처지다.
그래서 찾은 곳이 서울 중구 필동1가 3-20 ‘충무로 쭈꾸미 불고기’(02-2279-0803)다.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로 나와 극동빌딩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농협 건물을 지나 대도약국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10여m 걸어가면 왼쪽에 있다.

1976년 서울 신문로에서 개업해 90년 이곳으로 이전한 뒤 지금까지 37년째 이어오는 집이라 맛은 정평이 나있다. 가게 입구는 무척 허름하다. 이 집이 문을 연 것인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가게 안은 나름 깔끔하고 세련됐다.
다른 주꾸미 요리집들과 달리 주꾸미를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구워먹는 것이 특징이다. 1명이 먹기에는 다소 많은 ‘쭈꾸미’(1만8000원)와 2명이 먹을만한 ‘쭈꾸미 2인분’(2만8000원)이 있다.
주꾸미를 시켰다. 빨간 숯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로가 들어오고 그 위에 석쇠가 놓인다. 시원한 콩나물 냉국, 상추·고추·마늘 등 야채들이 나오고 각종 밑반찬도 깔린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주꾸미가 나온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주인 집안에 3대째 내려온 비법 양념장에 버무려진 상태다. 새빨갛긴 하지만 매울까봐서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다. 본고장에서는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먹지만 서울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통해서 매운 맛을 완화했다. 정말 매운 것을 원한다면 가게에 얘기하면 그렇게 해준다.
주꾸미 몇 마리를 집어들고 석쇠 위에 올린다. 날주꾸미라면 숯불 위에서 쉽게 타지 않지만 고추장이 묻어 있다 보니 깜빡 한 눈을 팔면 주꾸미 몸 곳곳이 시커멓게 타버린다. 주꾸미는 원래 뜨거운 물에 데쳐 먹을 때도 살짝만 데쳐야 특유의 부드러움을 즐길 수 있다.

주꾸미 불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구우면 딱딱해지고 양념도 타니 자주 뒤집어주며 굽다가 양념이 촉촉해질 때쯤 바로 먹으면 된다. 하나를 구워 입에 넣어봤다. 크기가 적당해 한 입에 들어간다. 살짝 구워 전혀 질기지 않다. 오히려 씹을수록 나오는 육즙이 매콤한 양념과 어우러져 정말 감칠맛이 난다. 석쇠의 네 귀퉁이를 돌려가며 주꾸미를 조금씩 올려 구워먹는 방식이 재미있다. 주꾸미는 수온에 따라 맛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충남, 전남북 등 그 시기 가장 맛있는 지역의 것을 사용한다.
식사로 공기밥(2000원)을 주문해도 되지만 두 사람 이상이라면 잘게 썬 주꾸미와 야채를 밥과 함께 매콤하게 볶아내는 ‘쭈꾸미 야채 볶음밥’(5000원)을 권한다. 다만 덜 볶아져 나오는 수도 있으니 바짝 볶아달라고 미리 얘기하는 것이 좋다. 된장찌개도 따라 나오는데 조금 짠 듯하다. 점심시간에는 쭈꾸미야채 볶음밥을 된장찌개와 함께 식사 메뉴로 먹을 수 있다.
주꾸미에 질렸다면 키조개 관자만 구워먹을 수 있는 ‘가이바시’(1만8000원)도 추천한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고 칭찬이 자자한 메뉴다. 하지만 이 집 주꾸미 불고기 맛은 절대 질리지 않으니 큰 맘 먹고 가이바시만 따로 청하거나 매콤하게 양념된 주꾸미와 키조개 관자를 함께 구워 먹는 ‘모둠’(2만8000원)을 택해야 할 듯하다. 키조개는 충남산만 쓴다.
빨간 의자는 쿠션을 들면 빈 공간이 나와 옷이나 가방을 보관하기에 편리하다. 1, 2층 50여석인데 점심 때는 식사 손님, 저녁 시간에는 주꾸미 불고기 안주 술손님으로 붐빈다. 월~금요일은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 토요일은 같은 시간에 문을 열어 오후 9시에 닫는다. 일요일과 명절은 쉰다. 주차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