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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강요’ 목숨 끊은 신병, 22년 만에 보훈 보상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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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강요’ 목숨 끊은 신병, 22년 만에 보훈 보상 인정
  • 김성용 기자
  • 승인 2018.08.12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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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부대 전입 5일 만에 극단적 선택
법원 "사망 전 암기사항 숙지 힘들어 해"

지난 1996년 부대 전입 5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병에 대해 법원이 가혹행위가 원인이라고 22년 만에 인정, 보훈 보상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이모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요건 비해당 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지난달 26일 판결했다. 

이씨 아들은 20세였던 1996년 2월 공군 교육사령부에 입대해 같은 해 4월24일 방어중대 경비병 보직을 받아 복무하게 됐다. 

아들 이씨는 5일 뒤인 29일 헌병대대 고가초소에 단독으로 투입돼 경계근무를 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이씨는 당시 비정상적인 암기사항 강요 및 미숙지로 인한 질책 등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아들의 사망 원인이라며 지난해 10월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신청을 했고, 올해 2월 “군 내부적인 부조리 등에 의해 자해 사망했다고 인정할만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비해당 결정이 나오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씨 요청에 따른 이뤄진 2014년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조사 결과에 주목했다.  

여기에 따르면 아들 이씨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당시 신병이 전입돼 오면 선임병들이 약 150~200명의 지휘관 참모의 차량번호 및 관등성명, 소대병사 기수표, 초소 전화번호 등을 A4 종이 4~5장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적어주며 암기하도록 지시했다.

신병은 이를 전입 3일 후 단독근무를 할 때까지 외워야 했고, 선임병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암기상황을 점검해가며 질책을 했기 때문에 휴식시간은 물론 심야에도 화장실 등에서 잠을 자지 않고 암기를 했다. 

또 이씨가 사망 당일 오전 11시30분께에 근무 투입 전 마쳐야 하는 점심식사도 하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차량번호를 외우며 힘들어했다는 사실 등도 조사 결과 밝혀졌다.

재판부는 “이씨 동기들은 이씨가 내성적이어서 말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항상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잘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일병 정모씨는 이씨가 신병 중 제일 뛰어나 보였다고도 했다”며 “이런 진술 내용 등에 비춰보면 이씨가 군에 입대하기 전 또는 입대하면서부터 자살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씨는 사망 당일 오전 암기사항을 제대로 못 외웠다고 질책을 받았고, 경계근무를 하는 동안 상병 김모씨로부터 수시로 점검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4시 50분께 목숨을 끊었다”면서 “이런 여러가지 사정에 비춰보면 이씨는 보훈보상대상법상 재해사망군경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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