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장사진‚ 하루 50세트 사들인다는 중간상도

“주화 샀어요? 나한테 팔아요. 돈 더 얹어줄게.”
최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에서 만난 두 중년 여성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방금 한은에서 나온 여성은 주변을 살피더니 자신이 산 ‘주화세트’를 다른 여성에게 건넸다. 그걸 받은 여성은 주화를 자신의 가방 속에 넣고 다시 무언가를 꺼냈다. 만원짜리 지폐 두 장과 1000원짜리 지폐 세 장.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여성은 다른 사람이 한은에서 1만4800원 주고 산 주화세트를 2만3000원에 다시 사들였다.
한은에서 2001년부터 매년 발행해온 ‘한정판 주화세트’는 소장가치가 높다.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1원, 5원부터 10원, 50원, 100원, 500원 등 그 해에 생산된 6종류의 동전들을 한정된 수량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주화세트 판매를 담당하는 서원기업 이규훈 과장은 “화폐박물관 방문객들이 기념으로 사갈 수 있게 처음 제작을 시작했다”며 “매년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금까지의 판매추이 등을 감안해 물량을 정해왔는데 매년 조기매진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올해의 경우 5만개 한정으로 1차 현장판매가 진행됐고 시작 열흘 만에 매진됐다. 하지만 ‘한정 수량’이 부각되면서 ‘소장용’이라는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은에서 발행하는 주화세트가 암암리에 뒷거래 되는 건 예전부터 계속된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법적으로 제지할 권리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재기로 인한 피해는 순수하게 기념용으로 구매하려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한 시간 넘게 줄에서 기다리던 한 중년 여성은 결국 사는 걸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 여성은 “손자들 주려고 한 세트 구입하려 했는데 사재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못 샀다”며 “저런 사람들을 통제해야 진짜 기념하려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한정판의 희소성을 노린 리셀러(reseller·상품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최근 많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상품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측면에서 다각적인 고려를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