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TV 드라마 '선덕여왕'(2009) 중 신라의 실권자 '미실', SBS TV 드라마 '대물'(2010)의 대한민국 최초 여대통령 '서혜림' 등으로 카리스마를 과시한 '안방극장의 여제' 고현정(41)이 자신의 성을 내건 SBS TV 토크쇼 '고쇼'에 이어 자신의 성과 맞닿은 영화를 들고 나왔다.
코믹 액션 '미쓰GO'다.
그 동안 홍상수(52) 감독의 '해변의 여인'(2006),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이재용(47) 감독의 '여배우들'(2009) 등에 모습을 비췄지만 상업영화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고현정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천수로'역을 맡았다.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촌스러'라고 들릴 수 있는 캐릭터 명처럼 영화 속 고현정에게서 안방극장의 여걸 같은 당당함이나 여신 같은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다. 푼수 같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것은 물론, 패션 테러리스트적인 촌스러움에 충격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꾹 참고 본다면 엄청난 변신을 접할 수 있다. 역시 고현정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13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공개한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린 시절 난파선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공황장애로 고통 받던 '천수로'는 어느 날 증상이 갑자기 심해져 위기에 처한다. 길 가던 수녀의 도움으로 약을 먹고 정신을 가다듬은 수로는 수녀를 대신해 누군가에게 케이크와 꽃다발을 전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만나러 간 호텔 방에는 그 남자를 비롯해 두 남자가 죽어있었다. 졸지에 살인자로 몰릴 처지에 놓은 수로는 간신히 방을 빠져나온다. 잔인한 조직 보스 '사영철'(이문식)의 밑에 숨어들어있는 형사 '빨간구두'(유해진)에게 꼬리를 밟혀 결국 경찰에 소환된다. 조사 과정에서 수녀는 가짜이고, 자신은 두 폭력 조직 간 마약 거래의 심부름꾼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찰은 물론 조직으로부터 마약과 돈을 빼돌린 것으로 오인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된 수로에게 빨간모자는 "지키주겠다"고 약속한다. 실제로 빨간모자는 폭력배의 습격에서 수로를 구하다 부상까지 당한다. 이를 계기로 수로와 빨간모자는 사랑에 빠져 피신처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영화도 천수로와 한참 닮아있다. '코미디'라기에는 이야기가 지루하고 따분하게 흘러가고, '스릴러'라기에는 톱니바퀴의 이빨 중 어딘가가 빠진 것처럼 긴장감이 떨어진다. 아니, 어떤 부분은 화장실에서 일보고 그냥 나온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와 한참을 고민해도 명쾌하게 풀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하지만 웃고 싶어도 웃을 곳이 없고, 빠져들고 싶어도 빠져들 곳이 없으니 하나를 챙기는 것도 힘들기 그지 없다. 그나마 영화 후반부에 두 번의 큰 반전이 있어 오래도록 기다린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합격점을 줄만하다. 특히 이 영화의 '원톱' 고현정은 0% 메이크업의 100% 민낯으로 출연해 유해진과 키스신을 벌이고, 물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과감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유해진(42) 성동일(45) 이문식(45) 고창석(42) 등과 특별출연한 박신양(44) 이원종(46)까지 연기파 남자배우 6명이 빙 둘러싸고 고현정을 보호한다. '빨간구두' 유해진은 전매특허인 화려한 입담 대신 눈부신 액션으로 또 다른 매력을 펼치고, '성 반장' 성동일은 용의주도하고 탐욕스러운 형사반장을 능글능글하게 표현했다. '사영철' 이문식은 SBS TV '옥탑방 왕세자'의 똑똑한 '표택수 전무'에서 일자무식 좌충우돌형 보스로 제대로 돌아왔고, '소 형사' 고창석은 한 마디 하는 데도 1분 넘게 걸리는 말더듬이를 사실감 넘치게 실현했다. '백봉남' 박신양은 특유의 눈빛과 말투로 사영철의 라이벌인 한국 최대 자금력을 가진 조직의 보스가 됐고, '정신과 의사' 이원종은 분량은 적었지만 존재감을 마음껏 선보였다.
고현정은 "역시 남자들과 하는 게 좋다"면서도 "하지만 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홍일점으로 일을 했다는 차별성보다는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고 돌아봤다. "제작 과정에서 급박한 상황도 많았는데 경험 많고 에너지 좋은 선배들이 아니었으면 힘든 상황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남다른 고마움을 나타냈다. 고현정이 언급한 급박한 상황은 촬영 중반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당초 '기담'(2007)의 연출자 '정가형제' 중 정범식(42) 감독이 연출하던 중 '달마야 놀자'(2001)의 박철관 감독으로 교체됐다. 이 때문에 다른 영화보다 긴 1년의 촬영 기간을 거쳐야 했다.
고현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 받은 유해진과의 키스신에 관해 "나는 유 선배가 워낙 영화도 많이 찍고 연기도 잘해서 경험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러브신은 오히려 내가 더 많이 해봤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감독이 항상 촬영장에서 음악을 들려줬는데 키스신 찍던 날도 부드러운 음악을 들려줘 긴장도 별로 안 했다"면서 "영화상으로는 키스신이 많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촬영할 때는 꽤 많이 찍었다. 하지만 내가 굉장히 소중하게 다뤄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감사했다"며 유해진은 물론 박철관 감독 등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천수로가 변신하는 계기인 만큼 중요했던 수중 신의 관건은 고현정의 '물 공포증'이었다. 그러나 고현정은 철저히 준비해 깊은 물 속에서 8~9시간씩 계속된 촬영을 너끈히 해냈다. "나는 원래 물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 한다"며 "굉장히 무서워하는데, 그래도 즐겁게 잘 촬영했다"고 전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마지막 수중 촬영 때 장비를 갖추고 5m 이상 물속으로 들어간 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신이 있었다. 그런데 올라오는 과정에서 방향감각을 잃어 내가 위로 가는 건지 옆으로 가는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숨은 다 끝났고 굉장히 무서웠다. 옆에서 건져내주지 않았으면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유해진이 "그 촬영 때 같이 있었는데,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고현정이 사력을 다해 수면 위로 올라와 정말 두려워 하더라.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거들지 않았어도 고현정의 목소리 떨림만으로도 당시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현정은 '미쓰GO'의 흥행성적을 놓고 "김수로씨가 '고쇼'에 나와서 나한테 'A 마이너스'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영화가 300만명 이상 들어야 'A 플러스'가 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관객의 사랑을 언제 한 번 받아볼까 하는 바람을 갖게 된 계기도 됐다"며 "물론 서서히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대작들과의 대결에서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사 도로시 제작, NEW 배급으로 2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