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수용하기에 참으로 불편한 작품들이다. 관객은 작품이 지시하는 행동 사항을 수행해야 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귀청을 때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서울대미술관에서 4일부터 시작하는 ‘숭고의 마조히즘’ 전이다. 미술관 측은 “관객과 작가가 맺게 되는 새로운 관계를 ‘숭고’와 ‘마조히즘’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에 배치된 작품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작품을 이해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시각 외의 여러 감각을 동원해 작품을 보고 제작 과정에까지 참여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관객은 작품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을 경험한다. 작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작품 일부분을 관객의 참여에 맡긴 채 전시공간에 작품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와 과정에서 희열을 경험하기도 한다.
미술관 측은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쾌와 불쾌의 감정이 결합한 미적 체험을 ‘숭고’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이러한 이중적인 심리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마조히즘의 개념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마조히즘이란 타인에게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여기에는 고통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오가는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미술관 측은 이와 같은 숭고와 마조히즘이 지닌 상반되는 감정의 공존과 그 권력관계는 현대예술에 있어서 작가 혹은 작품과 관객 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기획했다고 전했다.
전시장에는 고창선·구동희·박준범·손몽주·오용석·임상빈·정재연 작가의 설치, 영상, 사진 15점이 설치됐다.
구동희는 바닥에 차단봉과 안전 바를 어지럽게 설치해 관람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관객과 작품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예술작품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무언가는 어디에도 없다.
미술관 측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해야만 했던 미술관의 오랜 권위적인 작품 감상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손몽주는 미술관의 벽과 벽 사이에 수많은 고무밴드를 고정해 놨다. 관객은 고무 밴드가 만들어낸 공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고무밴드의 미세한 떨림과 함께 그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빛들을 시각적, 촉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 공간 속을 가로지르는 선과 면들은 관객들에게 마치 미로 속에 있는 것처럼 새로우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준다.
관람은 자유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일반 3000원, 어린이·청소년 2000원. 02-880-9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