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안법(국보법)이 지난 1일로 제정된지 63년이 됐다. 최근 경찰이 학생회 활동을 했던 졸업생·휴학생을 대상으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비판을 받고 있다.
국보법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내에서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이후 2·4파동으로 '국헌(國憲)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僭稱)하거나 그것에 부수해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의 형벌을 과하는 법률로 제정됐다.
하지만 63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보법을 둘러싼 논쟁은 뜨겁다.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국보법 위반 사건 급증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국보법 위반 검거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학 캠퍼스에서 때 아닌 공안수사 바람이 불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경찰 등에 따르면 D대학 휴학생 오모(25·여)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북한 서적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3년 전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만들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에서 오씨의 지문이 발견됐는데 그 옆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관련 서적이 꽂혀 있었다는 이유다.
H대 졸업생 박모(29·여)씨도 지난 10월14일 경찰 10여명으로부터 자택을 압수수색 당했다. 박씨의 대학에서 이적이념서클을 만들고 그곳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박씨는 "2006~2007년 학생회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적단체나 지하이념서클을 만든 일은 없었다"며 황당해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집권 첫 해인 지난 2008년 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은 40명이다. 그 후 2009년 70명, 지난해 10월 말까지 130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6년과 2007년 각각 35건, 39건 이었던 것에 비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국보법 위반 사건 영장신청 남발도…
또 이명박 정부 들어 통신감청, 우편검열 등 통신제한조치의 83%가 국보법 사건 수사를 위해 발부된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통신제한조치허가서 죄명별 발부 현황' 분석 결과에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올해 7월까지 발부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는 모두 500건이다. 그 중 국보법 사건 수사용이 414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살인 30건, 군사기밀보호법 5건, 체포·감금 4건, 성폭력범죄 3건, 뇌물공여 2건 등이다.
김 의원은 "통신제한조치가 강력범죄 수사에는 별로 활용되지 않고 보안법 수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감청이 정부비판세력을 감시·탄압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국보법 위반 입건자의 증가와 국보법 수사용으로 통신제한조치가 무분별하게 활용되면서 경찰과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법원에 신청한 구속영장의 기각율은 43.3%에 달했다. 2008년 29건, 2009년 16건, 지난해 10월 말 22건 등 모두 67건의 국보법 사건에 대해 법원은 29건을 기각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과 2007년에는 23건의 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이 기각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서 수사당국이 국보법과 관련해 무분별하게 영장을 신청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적대적 대북정책 탓…악용 우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적대적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이것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광철 변호사는 "국보법은 사실상 북한을 주된 규율과 규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입건자 수가 급증하는 원인은 적대적 남북관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국보법은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 조항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악용되면 정권 국보법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대를 역행하는 국보법은 폐지돼야 한다"며 "국보법 폐지를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국제정세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