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령 의혹이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벽보를 게시했더라도 내용이 사실에 해당하고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각각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 지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A씨와 해당 아파트의 관리비 바로잡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B씨는 지난 2020년 아파트 운영비 횡령 의혹이 제기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C씨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이들은 아파트 각 동 로비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미쳤구나 입주자대표 회장", "당신에겐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해 모욕한 혐의도 받았다.
한편 C씨는 2022년 8월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 횡령 혐의로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판결이 확정됐다.
1심과 2심은 혐의를 모두 인정해 이들에게 각각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게시한 글들이 사실에 해당하고, 입주자대표회의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공익성도 인정할 수 있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설치한 현수막 내지 모니터에서 기재된 글의 주요 내용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므로, 글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를 임의로 사용한 피해자가 회장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부당하고, 피해자의 자진 사퇴를 통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정상화를 도모하해 입주민 공동의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피해회복을 위한 정당한 조치를 취한다는 이유로 현수막 등을 설치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주된 의도와 목적의 측면에서 공익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모욕 혐의에 대해서도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에 해당할 뿐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