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소재 대학 4학년 박모(24·여)씨는 기업 입사 시험에서 연거푸 낭패를 보고 큰 상심에 빠졌다.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영어학원비와 각종 자격증 시험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지만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다.
박씨는 "아무래도 요새 취업이 잘 안되니 일하고 싶은 분야에 입사 지원을 하기 보다는 마구잡이식으로 원서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 보니 노력보다는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졸업 전에 취업을 못하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성공'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취업을 위해 대학의 낭만과 학문도 포기한채 고3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능력과 실력보다는 학벌과 외모, 나이, 성별 등 외적인 것에 의해 자신이 평가받는 우리사회에 대한 아쉬움만이 더한다.
성취보다는 좌절만 커지는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그만큼 성공에 대한 시각도 자신에게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 알바몬이 대학생 423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성공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자수성가 가능성에 대해 '쉽게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로 치부했다.
반면 '누구나 노력하면 자수성가할 수 있다'며 성공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는 이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42.3%로 조사됐다. 대학생 5명중 3명은 성공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여기는 것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 다니는 이모(25)씨는 올해 대기업 10곳에 원서를 냈지만 1곳에만 겨우 통과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면접시험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취업을 하지 못해 대학 졸업을 1년 뒤로 미뤘다.
이씨는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방대 출신이라는 한계점이 있다"며 "후배 1명이 이번에 졸업을 하는데 이 친구도 꿈이 없다고 한다. 나도 비슷하다. 꿈이 없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모(25·여)씨도 "계속 취업에 실패하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자괴감 마저 든다"며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조차 불분명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변에 자기 실력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도움이나 인맥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에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다"면서 "심지어 부모에 대한 원망마저 들기도 한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대학생들이 성공에 대해 불신하는 이유는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 전반에 시대적인 우울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청년(15~29세) 실업률은 2004년 7.5%에서 지난해 7.6%로 0.1%p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실질 청년 실업률은 같은 기간 12.2%에서 16.7%로 4.5%p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취업이 안 돼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이 정부의 통계보다 우리 주변에 더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 청년층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들이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직접적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자존감도 낮고 '뜬 구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은 "지금 청년층들은 아버지가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에 망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에 성공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청년 실업 수치가 높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청년들이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것이 문제"라며 "스스로 어떤 것을 할 수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부모를 잘 만난 친구들만 성공한다는 생각에 출구가 안보인다고 여기는 청년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결국 청년들의 이러한 인식을 바꾸려면 정부의 정책과 기성제도가 만들어 낸 시스템부터 고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 위원장은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청년들 스스로가 만들어 냈거나 선택의 결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정부의 제도나 법이 재정비돼야 청년들이 활개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취업이 안된다고, 성공하기 어렵다고 가라앉기 보다는 본인이 처한 힘든 상황을 드러내고 공감을 이끌어 내야 대안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며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버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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