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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에 안전벨트를 노후불안대책]"정년연장은 고령자들 고용을 연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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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에 안전벨트를 노후불안대책]"정년연장은 고령자들 고용을 연장할 수 있을까"
  •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3.01.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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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고령자들의 일자리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첫째는 현재 빠르게 진행 중인 인구고령화가 가져올 것으로 우려되는 인력부족문제이다. 고령인구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연령층의 고용 증가는 전체 노동력의 감소를 늦추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여성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과 함께 가장 인구고령화에 대비한 가장 중요한 노동시장 정책의 하나로 꼽힌다.

둘째는 중년 및 고령근로자들의 고용불안과 이로 말미암은 빈곤문제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경험하면서 평생고용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주된 일자리로부터 퇴직하는 연령은 점차 빨라져서 현재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연령은 평균 만53세에 불과하다. 중년 이상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은 소득의 감소, 건강의 악화, 사회안전망으로부터의 이탈 등의 경로를 통해 고령자들과 그 가족을 빈곤에 빠뜨리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고령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이들이 좀 더 오래 동안 노동시장에 남아있게 하기 위한 다각도의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년연장에 관한 논의, 임금피크제 실시에 대한 지원,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전직훈련 및 직업알선 프로그램의 확대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조건으로 하는 정년연장은 고령자 대책과 관련된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공약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면 과연 법적인 정년연장이 우리나라의 고령자들로 하여금 적어도 60세까지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하건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우려의 가장 주된 근거는 정년연장으로 인해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는 근로자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 45세 이상 근로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자영업에 종사한다. 물론 이들에게는 정년이 없다. 또한 4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삼분의 이는 정년제가 없는 사업체에 근무한다. 정년연장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정년이 있는 사업체에 근무한다고 해서 모두 정년퇴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을 그만둔 4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약 10퍼센트만 정년 때문에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혜자들의 수가 적은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년연장의 또 다른 한계점은 빈곤의 위협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다수의 근로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년연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대부분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들과 공공부문 직원들이다. 45세 이상 근로자의 약 삼분의 일이 고용되어 있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정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대부분 건강의 악화, 직장의 파산 및 폐업, 정리해고 등의 이유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있다.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들도 법적인 정년연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 따라서 이들 다수의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연장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완화해주기 위해서는 법적인 정년연장을 넘어선 추가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정년이 퇴직의 비교적 중요한 사유로 나타나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정년연장의 효과가 긍정적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 정년이 있어도 이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퇴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당수의 기업에 공식적인 정년보다 평균 2년 정도 이른 비공식적 강제퇴직의 관행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기업 근로자의 퇴직결정은 공식적인 정년보다는 비공식적인 퇴직관행에 의해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조기퇴직을 강제할까?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기업의 임금체계와 직무구조가 경직적이어서 근로자의 생산성이 변해도 이에 맞게 임금과 직무를 조정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이러한 여건이 바뀌지 않는다면 정년이 법적으로 연장되더라도 현실적인 조기퇴직의 압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경우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고령자의 고용이 늘더라도 이것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령근로자의 고용을 연장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경우는 예외적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필자도 백세시대에 걸맞게 정년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정년을 폐지하여 나이가 일을 계속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적인 정년연장이 중장기적으로 임금체계의 유연화나 직무구조의 개선과 같이 고용연장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인 변화를 촉진하리라는 전망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일자리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고령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법적인 정년연장을 넘어선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별로 얻을 것이 없는 고령의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좀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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