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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선수 말고 시민을 알고싶다, 영국 '런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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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선수 말고 시민을 알고싶다, 영국 '런더너'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07.2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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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더너 (크레이크 테일러 지음·오브제 펴냄)

1948년에 이어 64년 만에 그곳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린다.

1000년대부터 수도가 됐고, 영국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로도 모자라 영연방의 사실상 중심도시로 자리 잡은 런던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템스강 하구에서부터 약 60㎞ 상류에 자리한 총면적 1578㎢, 인구 6000여만 명의 거대도시다. 영국의 해가 진 지 오랜 지금도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와 더불어 세계 최대 도시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접한 뉴스는 곧 경천동지였다. 빨간 2층 버스와 함께 런던의 명물 중 하나인 검은 택시 ‘블랙 캡’의 기사들, 철도 보안서비스, 청소 인력, 공항 경비원들까지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볼모로 삼아 파업을 강행하며 요구 관철을 노린다는 얘기였다.

한국의 서울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사업가가 됐든, 노동자가 됐든 올림픽만큼은 성공시키자며 하나로 뭉칠 것이다. 88올림픽 때도 그랬고, 2002한·일월드컵 때도 그랬다.

그런데 런던 사람들, ‘런더너’들은 다르다. 무슨 배짱이고, 어떤 발상이기에 그런 것이 가능할까.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7대 수출국으로 껑충 성장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인지 런더너들의 뇌 구조를 분석해보고 싶던 찰나에 책 한 권을 접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테일러가 쓴 ‘런더너’다. 캐나다 알버타주 에드먼튼에서 태어나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자란 그는 처음 런던에 와서 실망하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런던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는 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층버스는 습기로 가득했고, 주택단지의 몰개성에 질려버렸다. 무서울 정도로 압도적인 도시의 사람들과 역사 앞에서 그는 소금에 닿은 말미잘이 돼버렸다.

그러나 떠나보니 오히려 런던이, 그 활기 넘치는 에너지가 몹시 그리워졌나 보다. 그래서 런던으로 되돌아온 그는 다른 눈으로 도시와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누가 런더너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5년 동안 퍼브와 카페, 거실과 사무실, 가게와 거리에서 200여명의 런더너들을 만났고 그들이 평소 런던에 관해 느껴온 생각, 마음들을 들었다.

그들 중에는 영국의 다른 지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런던에 온 사람들부터 대대로 미리르보 교회 종소리가 들리는, M25 고속도로 노선 안에서 태어나 런던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토박이도 있었다. 노숙자부터 청소부, 공무원, 주부, 주 장관 대리도 있었다. 런던에 갓 도착해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신나게 둘러보고 유람하기도 하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기도 했다. 이성 또는 동성과 사랑을 하는 중이기도 했다. 저자가 만난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대인과 퀘이커 교도가 아닌 이상 런더너라면 무조건 이곳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웨스트민스터 시티 등기 담당관은 런더너들의 행복한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장의사, 화장터 기술자들은 슬픈 죽음의 사연들을 전한다.

런던을 사랑하는 사람부터 미워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덕분에 런더너들의 속내를 살짝 느껴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열길 속까지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저자 스스로도 “그레이트 런던의 32개 자치시, 동부의 버크허스트 힐에서 서부의 하운즐로까지. 북부의 바넷에서 남부의 머든까지 약 600제곱 마일을 아울렀으나, 나는 여전히 이 도시를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그래도 지난해 말 출간되자마자 런더너들로부터 애정이 깃든 관심과 찬사를 받은 것이나 가디언을 비롯한 영국 유수 매체들이 ‘올해의 책’으로 꼽은 것을 보니 이 책이 동네 집값 떨어질까봐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했거나 불만 가득해 갖가지 비방으로만 가득 채운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쯤에서 갖게 되는 당연한 생각, 문득 국가적 대사에는 똘똘 뭉쳐온 서울 사람들은 정작 서울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할는 지 궁금해진다. 어느새 월드컵이 끝나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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