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한 부모와 모처럼 맛있는 외식을 하고 싶을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 손님에게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체험케 하고 싶을 때 찾을 만한 곳을 발견했다.
서울 삼성동 오크우드 호텔 1층의 한식 레스토랑 ‘비스트로 서울’(02-3466-8022)이다. 이곳은 하이엔드 다이닝의 훌륭한 요리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캐주얼 다이닝의 합리적인 가격을 접목한 ‘어퍼 다이닝’ 레스토랑을 표방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확 트인 실내가 한 눈에 봐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것이 한식당이 맞나 싶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길게 내려온 전등을 명주로 만든 갓으로 감싼 것이나 곳곳에 비치된 짙은 색 찬장들과 그 위에 자리한 소반과 소품들을 보면 그제서야 내가 한식당에 온 것이 맞구나 싶어진다.
전통 한식과 서양식 인테리어의 중간점을 잘 찾은 이 집은 메뉴 구성 역시 여느 한식당과 다르다. ‘알라카르트’(단품메뉴) 스타일의 메뉴 구성 때문이다. 보통 유명 한식당에 가면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먹게 된다. 하지만 가짓수도 만만찮은 데다 양도 많은 것이 보기에는 좋지만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집은 애피타이저, 메인메뉴, 라이스&누들, 디저트 등 양식 코스 방식으로 구성돼 외국인들은 편하고 한국인도 골라 먹을 수 있어 낭비가 적다.
뿐만 아니다. 남기기 쉬운 밑반찬을 최소화하는 대신 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는 등 6대 영양소를 한 요리 안에서 모두 섭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이나 젊은 한국인을 위해 양식당처럼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했다. 물론 이것들 역시 다른 한국적인 기물과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방짜로 제작했다.
애피타이저로는 부드러운 한우 채끝 육전, 해산물 동그랑전, 김치 해물전 등이 같이 나오는 ‘세 가지 전의 만남, 모둠전’(3만3000원)이 크고 두툼한 데다 제각기 감칠맛을 자랑하는 전들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특히 인기다. 문어, 새우, 오징어 등 해물과 각종 채소를 더한 뒤 겨자소스로 톡 쏘는 맛을 낸 ‘피로회복 문어와 새우 해물 냉채’(2만6000원),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삶아내 야채, 깨소스와 버무려 차갑게 즐기게 한 ‘삼겹 편채’(2만500원), 녹두 당면에 각종 해물을 넣고 그 위에 더덕, 홍고추를 갈아 만든 소스를 올린 ‘녹두면 해물 냉채’(2만500원), 한치를 얇게 저민 뒤 뜨거운 기름을 부어 살짝 데친 뒤 간장과 레몬으로 만든 소스를 더해 오묘한 맛을 낸 ‘한치 카르파치오’(1만9000원) 등도 사랑 받는다.
메인 메뉴로는 세계적으로 육질과 맛을 인정 받는 최고급 소고기인 호주산 와규에 설탕 대신 배즙, 양파즙, 생강즙 등을 넣어 칼로리나 건강 부담 없이 단맛을 내고, 육질마저 부드럽게 한 뒤 인삼, 밤, 대추, 은행 등으로 맛과 건강을 더한 ‘자연주의 와규 갈비찜’(5만900원), 청정해역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은대구를 뿌리 야채와 함께 매콤하게 졸여낸 ‘자연산 은대구 조림’(4만5000원), 된장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낸 전남 순천 토종돼지 목살을 무채와 곁들여 개운하게 먹는 ‘숯불 맥적 구이’(2만9000원) 등을 특히 추천할 만하다. 살짝 매콤하게 양념한 닭다리 살을 파채, 마늘튀김과 함께 즐길 수 있게 한 ‘비스트로 매운 찜닭’(3만5000원), 호주산 갈빗살을 잘 다진 뒤 인삼을 뼈 모양으로 해서 잘 빚은 다음 숯불에 구워낸 ‘인삼 숯불 떡갈비’(3만5500원) 등도 챙겨야 할 메뉴다.
식사로는 국내산 최상급 제철 버섯과 4년근 인삼이 고소한 들깨와 어우러져 보약 먹는 듯 깊은 맛을 내는 ‘국내산 버섯 인삼 들깨탕’(2만8800원), 직접 숙성시킨 묵은지와 국내산 돼지 목살을 함께 익혀낸 ‘돼지 목살 묵은지 김치찜’(1만6000원), 뜸 잘 들인 쌀밥에 5가지 나물을 넣고 자연숙성 약고추장로 맛을 낸 ‘오색 돌솥 비빔밥’(1만4800원), 고창 통보리의 참맛과 향긋한 버섯의 풍미도 모자라 새콤달콤한 간장소스가 차원 높은 맛을 내는 ‘통보리 버섯 비빔밥’(1만4800원), 담백한 고기 육수에 오이, 마 등을 곁들이고 매콤한 양념을 풀어 시원하면서도 톡 쏘는 맛을 즐길 수 있는 ‘냉 마 국수 말이’(1만3000원) 등이 준비되는데 제각기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디저트로는 직접 만든 깨강정, 호두강정 위에 캐러멜을 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린 ‘홈메이드 깨강정 아이스크림’(8500원)은 다시 가서 못 먹는다면 집에서 비슷하게라도 해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 오미자의 새콤함과 부드러운 크림이 어우러진 ‘오미자 판나 코타’(7800원), 현미 녹차와 크림이 어우러진 ‘현미 녹차 판나 코타’(7800원) 등도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메뉴는 아니지만 기본찬으로 나오는 동치미는 가히 일품이다. 국물도 맛깔스러운 데다 무도 아삭아삭해서 좋다. 기본찬이 맛있다는 것은 이 집 음식 맛이 수준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메뉴는 최고급 국내외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고, 천연숙성해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전반적으로 양념을 절제해 외국인 물론, 건강을 생각해 기존 한식의 짜고 매운 맛이 싫었던 한국인들에게 딱이다. 이들 메뉴는 단품으로도 주문 가능하고, 런치와 디너 코스(2인 이상 주문시)로도 맛볼 수 있다.
매장 맨 안쪽으로 바를 마련해 인삼, 생강, 유자청 등으로 한국식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막걸리, 와인, 브랜디 등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호텔에 있지만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므로 모든 메뉴는 부가세(10%)만 따로 붙는다.
독립된 5~6인용 부스석 4개와 최대 16명이 들어가는 룸 1개가 있어 각종 모임을 열기에 좋다. 좌석은 홀과 룸을 통틀어 84석으로 좁다는 느낌이 안 들어 좋다.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운영한다. 코엑스 주차장 내 오크우드 호텔 주차장에 주차하면 2시간 무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