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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들은 끝까지 의연했다…100만의 '거룩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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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들은 끝까지 의연했다…100만의 '거룩한 분노'
  • 윤이나 기자
  • 승인 2016.11.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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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2016.11.19.

19일 전국에서 개최된 촛불집회의 100만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와 친박계 정치인들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평화시위를 견지하며 질서 있는 분노를 표출했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적극 협조한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내주 국무회의를 주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등 국정 재개 의지를 다지는 상황이다.

주최 측인 1503개 시민사회단체 연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집회에 서울에서만 60만명, 전국적으로는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촛불을 밝혔다고 추산했다. 경찰도 서울 17만, 전국 26만2000명이 거리로 나온 것으로 봤다.

시민들은 버티기에 나서는 대통령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집회와 행진 등은 질서 있게 진행했다. 박사모 등 극우단체가 주최하는 집회가 같은 날 오후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있었지만 별다른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청와대 인근 행진에서도 경찰 측과 이렇다 할 마찰을 빚지 않았으며, 곳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등 빛나는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서울 도심에서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더 이상 못 참겠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촛불과 함께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었다.

가족과 함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찾은 황은주(41·여)씨는 "지난주에 나오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집회를 찾았다"면서 "(박 대통령이)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황씨는 "국민들을 너무 피곤하게 하는 대통령"이라며 "촛불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경기 일산에서 친구와 함께 광장을 찾은 이민지(27·여)씨는 "소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뭔지 보여주는 것 같다"면서도 "집회 자체는 예전과 같이 과격하지 않게 진행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2016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6.11.19.

집회에서는 다양한 시국 풍자와 공연도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지난 12일 집회 때 등장한 '박근혜 그만두유(豆乳)'는 물론이고 '닭잡아야 새벽온다','박근혜의 반격을 격퇴하자' 등의 내용이 적힌 이색 깃발과 전단들도 눈길을 끌었다.

본 행사 시작과 함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제곡 '나타나'가 흘러나오자 시민들은 폭소를 금치 못 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전 차움 의원을 이용하면서 드라마 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수 가리온과 전인권씨가 공연할 때 광장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시민들은 리듬에 몸을 맞추거나 노래를 합창하면서 집회를 즐겼다.

광장에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는 발언에 분개하는 시민들도 상당했다. 시민들은 "촛불이 꺼지면 횃불이 되고, 횃불이 꺼지면 모닥불이 된다"면서 김 의원의 발언을 조롱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모인 광장에는 한때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도 강하게 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촛불을 꺼뜨리지 않았고, 혹시 촛불이 꺼지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초에 다시 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가족, 연인과 함께 집회를 찾은 시민들도 많았다.

▲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2016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6.11.19.

서울 성북구에서 왔다는 김모(29)씨는 "여러 사람 중 한명이 되기 위해 나왔다. 대통령이 요지부동하는 것 같아 답답하지만 촛불이 계속되면 의미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함께 나온 연인에게 촛불을 옮겨 붙였다.

서울 관악구에서 왔다는 나모(49·여)씨는 "그간 나오지 못하다가 (김진태 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라는 말을 듣고 안 되겠다 싶어서 집회에 참석했다"면서 "대통령이 꼼짝 않고 있지 않나.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오후 8시30분께부터 시작된 행진 과정에서도 시민들은 대체로 평온한 모습으로 도심을 걸으면서 "박근혜는 하야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 이후 시민들은 광장에 남아 자유발언을 하거나 개별 집회를 진행했다. 트럼펫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는 시민, '하야가'에 맞춰 몸을 흔드는 노년의 모습도 보였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 등 집회가 진행된 자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담는 모습도 흔한 광경이었다.

행진 과정에서도 시민들은 대체로 절제된 분노를 보였다. 행진 종착지인 청와대 인근 내자로터리에는 본집회가 끝나갈 무렵인 오후 8시께부터 시민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4차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6.11.19.

오후 9시40분 기준 내자로터리부터 광화문 누각까지 시민 6만5000명이 집결해 자유발언과 '하야가' 제창, 촛불 파도타기 등을 이어갔다.

이들은 대열 앞쪽에서 대치중인 경찰에게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날카로운 긴장감 대신 시민과 경찰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분위기였다.

한 시민은 "우리가 싸우는 건 경찰이 아니라 경찰 뒤에 있는 청와대"라며 "경찰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외쳤다. 이에 여러 시민이 박수치며 환호로 호응했다. 경찰에게 "다리 아프겠다. 충돌할 것도 아닌데 교대 좀 시켜주지" 등의 말로 걱정하는 시민도 있었다.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조짐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시위"를 외치며 진정시켰다. 

한 50대 남성이 경찰에게 "나오라"며 시비를 걸자 주변 시민들은 이를 말리며 시위대 후방으로 안내했다.

오후 11시10분 현재 내자로터리에는 시민 4000명이 남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20대 대학생과 50대 중년이 주거니 받거니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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