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75%로 유지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연 3%에서 2.75%로 내린 이후 5개월 연속 동결 조치다.
엔화 약세와 대북 리스크가 경제를 압박하지만, 더디게라도 국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리를 추가로 낮춰야 한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내수 진작을 위한 동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내각 구성이 완료되는 4월께 금리가 인하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경기 더 악화되지 않아…금리 인하 효과 의구심"
금통위는 이 날 전체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기준금리는 지난 2011년 5월 3.0%에서 6월 3.25%로 오른 뒤 13개월만인 지난해 7월 3.0%로 낮아졌고, 석달 후인 10월에 또다시 0.25%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그 이후론 5개월째 요지부동이다.
이번 결정은 국내경기가 지표상 나아진 것은 아니나, 추가로 침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 결과다.
1월중 소매판매와 설비투자는 각각 전월대비 2.0%, 6.5% 떨어졌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도 전월보다 1.1%, 0.9% 쪼그라들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 날 금통위 전체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통상 1월 소매판매와 설비투자 지표는 전기대비 마이너스를 보인다"면서 "2월에는 마이너스(-)를 벗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2월 수출도 423억2700만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8.6% 줄었지만, 설 연휴에 따른 통관일수 감소 요인이 크다. 일평균 수출로 보면 20억6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5% 늘었다. 무역수지는 20억6100만 달러 흑자로, 13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2월 취업자 수는 2398만4000명으로 전년동월보다 20만1000명(0.8%) 늘었고, 실업률은 4.0%로 0.2%포인트 하락했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로 전월과 비슷한 오름세를 보였고,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전월동월대비 1.3% 상승했다.
금통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농산물 가격 안정으로 크게 확대되지 않겠지만, 기대인플레이션·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기가 개선되고 있는데다, 미국의 정부예산 자동삭감(시퀘스터, sequester) 발동과 이탈리아 정치 불확실성 등 대외 악조건이 미치는 여파가 제한적이라는 진단도 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읽힌다.
한은은 이 날 배포한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 "선진국의 재정긴축, 엔화가치 향방 등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향후 성장경로에 있어서는 하방리스크가 우세"하다면서도 "향후 국내경기는 완만한 개선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정책과의 공조로 금리를 내릴 것이란 명분 역시 정부 구성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약해졌고, 금리 인하 효과의 의구심이 크다는 점도 금리 조정을 망설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박기홍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위원은 "해외 상황이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뿐, 당장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혁수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정부조직법의 국회 계류로 새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기에서의 금리 조정은 쉽지 않다"며 "금리 인하가 실제 경기부양 효과로 나타날 지에 대한 금통위원간 견해 차가 좁혀지지도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금리를 내리면 이자소득 감소로 가계수지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고, 저신용 기업은 자금조달 환경의 양극화로 인해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르면 내달 금리 내릴 듯
금통위가 추가로 금리를 내릴 것이란 데 전문가 간의 이견(異見)은 크지 않다.
국내 경제의 더딘 회복세 탓이다. 일본의 무제한 통화완화와 북한 리스크가 경기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인다.
한은은 "주가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입과 국내 지정학적 위험 증대의 영향이 교차하면서 소폭의 등락을 보였고, 환율은 최근 지정학적 위험 부각으로 상승했다"면서 금융 시장이 대북 리스크에 미약하게나마 충격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금리 조정 시기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새 정부의 내각 진용이 완비되고 통화정책 틀이 구체화되는 4월을 유력하게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지표가 좋지 않아 추가 금리 인하가 요구되는 시기"라면서 "정책 공조 차원에서 정부조직 개정안이 정리되는 4월께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 위험도가 큰 만큼 새 정부의 구체적인 재정정책이 나오는 4월 이후 금리를 낮추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경제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 것 같다. 향후 대외여건이 최악에 달했을 때를 대비한 여력 확보 차원으로 이해된다"면서 "4월 금리 인하 기대가 살아있어서 시장이 크게 반등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씨티그룹·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IB)들도 4월 추가 인하를 점쳤다.
김 총재는 새 정부와의 정책공조 차원에서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향후 상황에 따라 정책조화가 필요하면 공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의 정책 기조에 관해서는 "취임하지 않은 분의 정책을 사전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새 정부의 초대 각료 인선 이후 현 내정자와 김 총재 사이에 '각별한 인연'이 화제가 되면서 두 기관의 공조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외환은행 보유 주식처분에 대해서는 "주어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국민연금(9.35%)에 이어 외환은행의 2대주주다. 1967년 외환은행 설립 때 100억원을 출자한 이후 수차례 증자에 참여해 현재 외환은행의 지분 6.1%(3950만주)를 보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