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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여성의 삶은 고달파"…삼중고 겪는 은행원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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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여성의 삶은 고달파"…삼중고 겪는 은행원 속내
  • 김지원기자
  • 승인 2013.03.08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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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성희롱·비정규직' 고통 받는 은행원

3년차 은행원 이예승(28·여·가명)씨.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며 은행에 입사했지만 이씨의 속은 씁쓸하기만 하다.

청년 실업난을 뚫고 어렵게 은행에 취직했지만 고객을 대하는 것도, 여성으로서 일을 하는 것도 어느 하나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무례한 고객을 만나도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웃으며 일을 해야 하는 점이 이씨를 가장 힘들게 한다.

은행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밀려든다. 낮술을 한 잔 걸치고 오는 고객, 업무와 상관없는 질문을 늘어놓고 가는 고객 정도는 양반이다.

이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고객은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하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고객이다.

이씨는 "일부 어르신들은 오자마자 반말을 하며 통장을 휙 던지는 경우가 많다"며 "조그마한 실수를 한 경우에는 '이래서 남자 직원 찾는 거야'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뒤에서 항상 상사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웃으며 대해야 하는데 이젠 정말 억지로 웃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9~10월 판매직 근로자 500명을 대상을 설문조사한 결과 2개월간 평균적으로 고객에게 ▲무리한 요구 3.6회 ▲인격 무시성 발언 1.6회 ▲폭언이나 욕설 0.6회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80% 정도의 조직에서 고객의 무리한 요구, 인격 무시성 발언, 폭언 등을 무조건 참도록 하고 분쟁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과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 고객을 대하는 것도 힘들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씨는 지난해 규모가 작은 지점으로 발령 난 후 매일 유니폼을 갈아입는데 곤욕을 치렀다. 탈의실이 따로 없어 폐쇄회로(CC)TV가 돌아가는 금고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CCTV에 잡히지 않으려고 사각지대에 최대한 몸을 붙여 유니폼을 갈아입느라 진땀을 흘렸다"며 "탈의실이 따로 없는 지점은 준비실(탕비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힘들게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난 후에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치마 유니폼 때문이다. 바지가 있긴 하지만 상사들은 치마를 선호한다.

그는 "이번 겨울은 너무 추워서 담요를 두르는 것도 모자라 책상 밑에 조그마한 난로를 놓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며 "치마 유니폼은 활동하기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도 즐겁지 않다. 은행의 규모가 작은 곳은 필수 인원만 두고 차례로 돌아가며 점심을 먹는데 이씨는 은행 안 상담실에서 배달 음식을 먹거나 간단한 분식류를 먹는다.

이씨가 빨리 먹고 나와야 동료가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식사시간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결혼을 앞둔 이씨는 요즘 기혼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을 해야겠단 생각을 갖고 있는 이씨는 특히 '출산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있다.

은행이 비교적 결혼한 후에도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임신을 하면 눈치가 보이긴 마찬가지다.

육아휴직을 모두 쓴 후 복귀하면 승진에 불이익을 받거나 비 핵심 부서에 배치될 것이 두려워 보장된 육아휴직을 모두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정규직인 이씨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계약직 은행원들은 이런 고충뿐만 아니라 낮은 임금, 복지 문제 등으로 더욱 힘들어 한다.

이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직을 고민하지만 그마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금융권 경력을 쌓아놓은 만큼 이직을 하더라도 금융권으로 재취업하기가 수월하지만 영 내키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직종으로 바꾸는 것은 더욱 힘들다.

이씨는 "고객을 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라며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합리한 점 등이 좀 더 개선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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