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25 가계부채 대책에서 주택 공급을 줄이기로 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신규 분양시장과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매물 품귀 현상과 청약 과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되레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31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8·25 대책의 핵심은 주택공급 축소와 대출·분양 심사 강화다. 주택공급 축소는 주택수급 불균형과 공급 과잉을, 대출·심사 강화는 집단대출(중도금 대출) 증가세를 막는데 각각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상반기 22조2000억원 줄어든 반면 중도금 대출은 12조1000억원 늘어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주택 공급 역시 정부의 무분별한 인허가와 건설사들의 밀어내기식 분양으로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어 2~3년 후 본격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방은 이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과 가격 하락 현상이 나타나며 수도권과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올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택지 용지를 전년 대비 58% 수준으로 줄이고 내년에 추가 감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허가나 분양 단계에서 조절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을 땅(공공택지) 공급을 우선 줄이겠다는 취지다.
사실 이 대책은 미분양이 속출하거나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지역을 겨냥한 것이다. 이번에 함께 발표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심사 강화, 미분양 관리지역 확대, 분양보증 예비심사제 도입 등도 이것과 맞닿아 있다. 더욱이 LH는 올해 초부터 공급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대책이 크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김경환 국토부 차관은 "올해 인허가와 분양 물량이 당초 예상치를 웃돌아 2~3년 뒤 공급과잉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수요가 부족하고 미분양 우려가 큰 지역에 대해 공급 속도를 선제적으로 조절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책은 시장 안정을 위해 집값이 크게 떨어지거나 오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포인트"라며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공급을 크게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분양권 전매 제한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 '알맹이'를 제외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킴으로써 가계대출과 부동산시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공급이 줄면 집값이 뛸 수 있다'는 왜곡된 신호를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대책이 발표된 이후인 지난 주말 모델하우스에는 12만명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래미안 장위1에 2만5000명, 세종 지웰 푸르지오에 2만3000명, e편한세상 시티 삼송2차에 2만5000명, 동탄2 호반베르디움 6차에 1만명 등이 다녀갔다. 또 미분양이던 수도권 공공택지지구 아파트는 이달 계약이 거의 없었는데 발표 이후 하루에 6~8건으로 늘기도 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향후 몇년 사이에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내집 마련을 미뤄왔는데 공급을 줄인다니 집값이 더 오르는 것 아닌가 하고 조급해졌다"며 "막차를 탄다는 심정으로 이번에는 청약을 넣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재건축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강남을 넘어 목동과 노원 등으로 과열 현상이 옮겨붙고 있는 모양새다. 개포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 발표 이후 매수 문의는 늘었는데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호가는 1000만~2000만원 올랐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가계대출의 양은 줄지 몰라도 질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택공급량이 줄면 대출 총액은 줄어들겠지만 인근 부동산이나 분양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대출을 더 받아야 해 가구 당 져야 하는 빚의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부동산시장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 필요할 경우 과열 현상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하겠다""관계부처 간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겠다"며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당장 시장이 안정될 지는 미지수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 대책은 선제적으로 주택시장을 관리하겠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분양권 전매 제한 등 핵심 규제가 빠지면서 반쪽짜리 대책이 됐다"며 "오히려 불안심리가 작용하면서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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