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금에 이르러 한국경제에 들이닥친 최대의 현안 과제는 단기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발(發) 관세전쟁에 대한 선제 대응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산업의 조속한 성장 구현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현안을 앞두고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FKI)가 지난 7월 16일 같은 날에 각각 ‘경주 하계포럼’과 ‘제주 하계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두 행사에는 국내 주요 대기업 및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각각 500명씩 총 1,000여 명이 집결했다. 이날부터 19일까지 3박 4일간 열리는 두 행사는 각각 1974년, 1987년부터 매년 여름에 열리는 경제계 최대 교류의 장이었다.
최태원(SK그룹 회장)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한국 제조업은 이미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라며 “인공지능(AI)으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면 국내 제조업은 향후 10년 안에 상당 부분 퇴출을 당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7월 17일 경주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AI에 희망을 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고 “최근 10년 동안 우리 제조업은 제자리걸음을 걸었을 뿐 아니라 제조시설들도 스케일이 작아지고 노화됐다”라며 “석유화학처럼 전통적 강세 업종조차 지금은 거의 전부 적자”라고 지적했다. 과거 대중(對中) 수출 특수로 성장해온 국내 제조업이 이제는 중국과의 직접 경쟁 구도에서 밀리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오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100일가량을 앞두고 올해 하계포럼 주제에 대해 “‘천년의 지혜, 미래의 길’로 정했다”라며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에서 새로운 천년을 고민해보자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PEC CEO 서밋의 세 가지 주제인 ‘비즈니스(Business │ 혁신적 기업 활동으로), 비욘드(Beyond │ 경계를 넘어), 브릿지(Bridge │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를 염두에 두고 저희 포럼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라고 덧붙였다.
류진(풍산그룹 회장) 한국경제인협회(FKI │ 한경협) 회장도 지난 7월 18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제38회 한경협 경영자 제주하계포럼’ 개회사에서 “기업가정신은 국가 경제의 엔진”이라며 “한국형 AI 생태계를 구축해 ‘AI 3대 강국’ 도약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류 회장은 “경제뿐 아니라 소프트파워가 함께 가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라며 ‘떡볶이’의 옥스퍼드사전 등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 등을 언급했다. 류진 회장은 “한국 '기업가정신'의 발전소 되겠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류진 회장은 다음 달 1일 미국의 상호관세(25%)발효 문제와 관련 “앞으로 2주가 경제의 운명이 달려있을 정도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해 다른 나라보다 좋은 조건을 얻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한 바 있는 류진 한경협 회장은 재계 인사 가운데 미국과의 네트워크가 끈끈한 대표적인 ‘미국통(通)’으로 꼽힌다. 이렇듯 미국 내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류진 회장은 "한경협은 회원사를 위해 서비스하는 곳"이라며 "기업들이 미국에서 가령 누구를 만나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한경협 회장이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인맥을 소개해주는 등 뭐든 도와주려고 한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풍산그룹과 SK그룹이란 글로벌 대(大) 기업을 각각 이끌면서 국내 대표 경제단체장이기도 하는 한국경제인협회(FKI) 류진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이 때마침 각각의 하계포럼에서 두 사안에 대한 철저한 대응을 당부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의 대표인 이들이 특히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달려있다’라거나 ‘한국 제조업이 10년 안에 퇴출을 당할 것’이라며 위기감을 가감 없이 여실히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최근 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류진 회장은 “(8월 1일 데드라인까지) 2주에 한국경제의 운명이 달려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라며 “이 기간 국익을 위해 ‘풀코트 프레스(전면 압박 수비)’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줄 건 좀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선택과 집중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도 한국경제에 대한 뼈아픈 진단과 반성부터 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새로운 산업 정책과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했지만 제자리걸음을 걸었다”라며 한국 제조업의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했다. 제조업의 생존전략으로 제시한 게 AI 생태계 구축이다. 최태원 회장은 “AI로 제조업을 일으키지 못하면 10년 내 제조업이 거의 다 퇴출될 것”이라고 했다. 류진 회장도 관세 현안 외에 한국경제의 최대 문제를 인구감소에 따른 경제 규모 축소로 보고 ‘AI 활성화를 통한 생산성 제고’를 해법 우선순위로 꼽았다.
무엇보다 한국이 관세전쟁에 유난히 큰 타격을 받고 제조업 활력이 떨어진 데는 AI와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혁신에 뒤처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정책의 실기, 규제 일변도의 법망이 기업의 발전과 전진을 가로막아 왔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 │ 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 올해 사상 처음 2% 아래로 떨어져 1.9%에 그칠 것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로 이어져 기업의 쇠퇴, 고용·투자 저하라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들게 했다. 난마(亂麻)처럼 얽히고 설킨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할 순 없다. 이들 재계의 ‘관세 대응’과 ‘AI 산업 육성’이란 간절한 호소를 허투루 들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족쇄가 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넘어 전체 산업의 판도를 AI 위주로 다시 짜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절실하다. 이렇듯 재계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직시하고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 화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