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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일 회장, 봉사와 희생, 선비정신으로 새로운 삶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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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일 회장, 봉사와 희생, 선비정신으로 새로운 삶 산다
  • 류효나 기자
  • 승인 2022.04.17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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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세일 회장.
▲ 장세일 회장.

인생 1막2장은 이렇게

▲ 위대한 한국인 대상 시상 모습.
▲ 위대한 한국인 대상 시상 모습.

장세일 회장의 현재 직책은 영주 선비포럼 상임대표, 홍능포럼 상임대표, 전국농민축산지원단 상임단장, 덕수 장씨 중앙종친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올해 74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무어냐는 질문에 매년새해에 금년 1년만 열심히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생을 공직에 있으면서 사회봉사를 위한 장 회장의 열정적인 모습에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본인의 사비로 충당하면서 이 사회의 좋은 일과 남을 도와주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누구도 장 회장을 시기하는 사람이 없다.

장세일 회장은 영주중학교와 안동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시 농업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한국방송통신대학 농학과를 졸업해 농업과 인연을 맺게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대부분의 공직자 출신들이 공직을 퇴직하면 은퇴해서 유유자적하는 것이 일상인데 장 회장은 퇴직 후의 활동이 현직보다 더욱 눈부시다.  특히 낮에는 공직에 근무하고 밤에는 대학에 나가 3개학과의 학위를 받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장 회장의 이력을 보면 전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과 전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제14기 민주평통자문위원을 역임하였고 60세에 한국 농어촌공사 선임이사 70세에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 임원을 역임 했다. 농업분야에서 장세일 회장만큼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한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듯싶다. 

금년에는 그 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해마다 사단법인 한국 신문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위대한 한국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부인 박영숙 여사도 초청해 사회봉사에 평생을 바쳐온 공로를 치하하고 부인의 내조를 격려하기도 했다. 선비의 고장 영주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 영주선비포럼상임대표 장세일 이웃돕기 성금 기탁식.
▲ 영주선비포럼상임대표 장세일 이웃돕기 성금 기탁식.

장세일 회장과 함께 지내면서 느낀 점은 늘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주변에 힘든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면 한 번도 이를 피하거나 거부하는 일을 본적이 없다. 본인의 힘이 미치지 못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고민과 아픔 을 함께 하면서 해결해 주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와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장 회장과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장 회장에 대하여 고맙다고 하고  직간접으로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다.

 

속칭 마당발의 별명


장 회장은 어떻게 그렇게 범위가 넓고 지인이 많고 열정적이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는 사람을 만들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맨파워를 속칭 ‘빽’ 이라고 한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한 집안 사람이라던가 여러가지 이유로 가까운 사이를 말한다. 과연 자세히 보니 장 회장은 대단한 ‘빽’이 있을만한 게 없다. 모두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이 모두 장 회장을 지원하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표로 삼아야 할 삶이라면 바로 장 회장 같은 분이 아닌가 한다. 평생 올바르게 살고 사회단체에 몸담아 이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이야 말 로 진정한 선비의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 나이가 70대 중반인데도 한창 젊은 사람의 정열 못지않게 활동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생관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진정 선비정신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국농민축산지원단을 출범시켜서 전국적인 선거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

여기에 참여한 전국의 농민 축산 관계자는 무려 1만명이 넘는 대규모의 지원단으로 발전하였고 각 시도별로 활동을 하였는데 개인의 역량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참하게 만드는 것은 전무후무하다.

 

선비정신과 가족관

▲ 덕수 장씨 중앙종친회장 위촉식.
▲ 덕수 장씨 중앙종친회장 위촉식.

또한 장 회장의 고향 사랑도 남다르다. 고향 영주의 선비포럼을 처음 발기할 때에 아이디어를 냈고 당시 장윤석 전 국회의원과 김주영 전 영주시장의 동의를 이끌어 내어 오늘날의 선비포럼이 있게 된 것이다. 영주의 선비포럼의 활동은 눈부시다. 애향활동과 더불어 정신문화를 선양하고 영주의 각종축제와 산업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세일 회장은 12남매의 대가족 형제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제일 맏이는 86세의 누님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집안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형제간에 불화가 있고 시집가고 장가가서 살림을 차리면 각자 살아가기 바쁘고 형제들을 돌아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장 회장 형제들은 12남매나 되는데도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함은 물론 매년 가족들이 1박2일로 모여서 조상을 기리고 동네잔치를 벌여 주변사람들로부터 부러움까지 사고 있다. 요즘 시대에 이런 가족이 어디에 있는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 참으로 정겹고 흥미롭다.

이러한 가족관계가 사회의 귀감이 되고 선한 사회활동의 소문이 마침내는 덕수 장씨 문중에서 중앙종친회장으로 추대하여 현재 종친회장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장세일 회장의 참 인생을 보고 시사하는 바를 크게 느끼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반성하고 참다운 인생에 대한 많은 깨달음의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나 혼자만 잘살면 잘사는 것인가, 물론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법 없이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장 회장의 삶은 그 차원을 넘어 나와 남을 동시에 이롭게 하는 그야말로 홍익인간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일요일 오후 한적한 시간의 여유를 즐기면서 마곡동 전국농민 축산지원단 사무실에서 마주한 장 회장과 찻잔을 앞에 놓고 장 회장의 지난 인생관과 세상 살아가는 폭넓은 고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고 언제 봐도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장 회장은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 하는 한 이사회의 밀알이 되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자는 헤어지면서 가슴 한곳에 따뜻한 마음과 존경심을 간직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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