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들이 입법실적을 쌓기 위해 신중한 검토 없이 입법안 발의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원발의 입법에 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지성우 교수는 27일 한국입법학회 학술대회 '국회 의원입법제도의 발전방안' 토론회 발제문에서 "의원입법안은 제16대 국회부터 급증했고 17대 국회에서 35배, 18대 국회에서 2배 증가했다"며 입법안 급증 실상을 소개했다.
지 교수는 "입법안 급증의 원인은 정부안에 비해 발의요건이 비교적 단순하고 법안발의 이전에 거쳐야 하는 필수절차가 없다는 점, 국회의원이 특정 계층이나 업무를 대표하고 이익을 관철함으로써 사회의 불만을 해소하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점 때문이다. 정부가 부처간 의견충돌이나 복잡한 절차를 우회를 위해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차명발의도 증가하고 있다"고 입법안 발의 급증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지 교수는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의원발의 입법안의 가결률은 16대 국회 27%, 17대 국회 21%, 18대 국회 13.6% 등으로 정부안에 비해 현저히 낮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부실한 법안이 다수 제출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법과대학장인 김상겸 교수도 이번 토론회에서 "의원입법안의 정부입법안에 비해 가결률이 훨씬 떨어지는 것은 국회의원의 평가와 관련해 신중한 검토 없이 실적위주의 법안 만들기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의원발의의 요건이나 입안절차가 정부의 9단계에 걸친 발의절차에 비해 4단계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실적위주의 입법 남발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현 제도를 문제 삼았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학선 교수도 "의원 스스로가 의정활동을 홍보하고 이를 다음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의원간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법률안을 발의하고 있다. 중복발의가 많아져 국회의 효율적 운영이 저해되고 있다"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전 교수는 또 "국회의원의 전문성 결여와 입법지원조직의 한계로 인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법률안이 제출되고 있다. 또 집행상 국가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줘 집행이 곤란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견수렴 등 절차를 밟지 않고 법률이 제정돼 집행과정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유발되고 있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용 교수는 "특히 최근에는 의원입법이 규제를 양산하고 이런 기업규제는 국민경제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의원입법의 규제적 성격을 지적했다.
◇묻지마 입법 방지 대책은?
지성우 교수는 이 같은 입법 홍수의 해법으로 입법평가제도와 규제영향분석제도 등을 제시했다.
지 교수가 제시한 입법평가제도란 법안의 헌법 위반 가능성 여부,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지 여부, 예산상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여부 등을 평가해 입법내용을 보완토록 하는 제도다.
지 교수는 의원입법에 규제영향분석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의원입법 절차에 규제영향분석서를 첨부토록 법제화해 의원입법이 규제회피심사수단으로 운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 정부와 국회가 함께 규제 신설을 억제하는 데 공동보조를 취함으로써 규제법안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 교수는 "시민단체나 언론사의 의정평가가 질적인 평가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설정해야 한다. 의정평가가 단순히 의원입법의 숫자 늘리기를 조장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상겸 교수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입법 차단을 위해 법률안을 제출하기 전에 법률안에 관한 상세한 계획서를 먼저 작성하고 법률안을 제출할 때 이를 첨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입법계획서에는 입법취지와 필요성, 중복법률의 차단을 위한 다른 법률과의 관계, 입법영향평가계획, 국민여론의 수렴방법과 절차계획 등 입법을 위한 전반적인 계획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호용 교수도 "엉터리 법률이 집행됐을 때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고스란히 전가되므로 입법권 남용은 어떤 방법로든 통제돼야 한다. 국회는 그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헌법의 규범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