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소유의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살이를 하는 가구가 962만에 달하고 이들 중 절반 이상(51.7%)은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등지의 집값은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지만, 가구 소득 증가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월 1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주택 소유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전국 무주택가구는 961만 8,474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954만 1,100가구에 비해 0.81%인 7만 7,374가구 늘어난 것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 2,207만 3,158가구의 43.57%가 소유 주택 없이 무주택으로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무주택가구란 가구원 전원이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경우로 내 집 없이 전·월세 등으로 거주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무주택가구 수가 2023년 기준 506만 804가구로 전체의 52.69%로 절반을 초과했다. 경기도가 238만 2,950가구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214만 3,249가구로 뒤를 이었다. 특히 서울은 무주택가구 비율이 서울 전체 가구 414만 1,659가구의 51.75%인 214만 3,249가구로, 2021년 51.2%, 2022년 51.4%에 이어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은 무주택가구 비율이 51.75%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50%를 웃도는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청년과 고령층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난 점도 무주택가구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몰리면서 지난해 전국 주택 시가총액은 약 7,158조 원으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68.7%에 달했다. 지역별 주택 시총은 서울이 2,498조 원(34.9%)으로 가장 컸고, 경기도 2,075조 원(29.0%), 인천 341조 원(4.8%) 등의 순이었다.
집값을 밀어 올리는 요인 중 하나는 부동산 투자 열기가 식지 않고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주택 구매 건수가 가장 많은 상위 1,000명이 사들인 주택은 총 4만 4,260채로 1인당 무려 44가구꼴이었다. 집값은 상승 곡선을 그리지만 가구 소득·자산이 늘어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내 집 마련의 벽만 높아지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의 주택구입물량지수(K-HOI │ 코이)는 6.4이었고, 2022년 3.0, 2021년 2.7, 2020년 6.2, 2019년 13.6, 2018년 12.8이었다. 2014년 26.4이었지만 10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주택구입물량지수는 중위소득 가구가 보유한 순(純) 자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을 끼고라도 살 수 있는 아파트 수 비율을 뜻한다. 다시 말해 중위소득 가구가 살 수 있는 가격 범위의 주택이 2014년엔 서울 주택 4채 중 1채에서 10년 만에 100채 중 6채로 급감했다는 뜻이다.
올해 1∼7월 전국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거래량이 100만 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 서민 주거안정에 적색경고등이 켜졌다. 이미 전세 사기 여파 등으로 월세로의 전환이 본격화한 데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예금 금리 하락 등이 겹치며 ‘전세의 월세화’는 더 빨라지는 양상이다. 거래량 증가와 함께 월세 상승 추세도 이어지자 주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지난 8월 17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주택 임대차 계약 중 월세를 낀 계약은 이날 집계 기준 105만 6,900건에 달한다. 확정일자 정보가 제대로 취합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1∼7월 기준 가장 많은 수준이다. 보증부 월세를 포함해 월세가 낀 계약은 2022년 84만 3,078건, 2023년 83만 8,772건, 지난해 83만 2, 103건으로 모두 80만 건대에 그쳤으나 올해는 이미 100만 건을 넘어섰다.
월세 거래량 급증에 따라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흐름 역시 지속하고 있는 흐름이다. 2021년 당시만 해도 전국적으로 월세가 낀 계약 비중은 1∼7월 기준 42.5%에 머물러 전세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2022년 51.0%로 절반을 넘은 뒤 계속 늘어나 올해 들어 7월까지 전국에서 이뤄진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이 61.9%에 달했다고 한다. 전세 비중은 올해 38.1%에 그치면서 처음 30%대로 떨어졌다. 특히 전국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Barometer │ 평가기준)’인 서울에서는 올해 1∼7월 월세와 전세의 비중이 각각 64.1%, 35.9%로 격차가 더 벌어져 있다. 이 비중은 2020년만 하더라도 40.7%였지만 2022년 50%를 넘어섰고 다시 3년 만에 60%마저 돌파했다. 임대차 세 건 중 거의 두 건이 월세다.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전세가 줄고 월세가 급증한 데는 제도 변화의 탓이 컸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핵심으로 한 새 임대차법이 시행돼 전셋값이 급등하자 상당수 세입자가 어쩔 수 없이 월세로 옮겼다. 여기에 2021~2023년 전세 사기 사건이 대거 터지며 전세 기피 현상마저 불거졌다. 거액의 보증금 마련이 쉽지 않은 1, 2인 가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엔 ‘6·27 부동산 대책’ 여파로 월세 시대가 가속화(加速化)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80%로 낮추고, 집주인이 전세자금 반환을 위해 받는 전세퇴거자금 대출 한도를 1억 원으로 줄이고, 다주택자의 전세퇴거자금 대출을 막았다. 이에 따라 전세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월세가 급증한 것이다. 이렇듯 6·27 대출 규제 여파로 아파트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서울 아파트 월세 수요가 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 이후 강남에서는 아파트 전세보다 월세 물건이 더 많아졌다. 지난 7월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월세수급지수는 103.2로, 2021년 10월 110.6 이후 가장 높았다. 월세수급지수가 100을 넘는다는 것은 수요가 공급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전세는 목돈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입자가 비용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임대인은 시중 금리를 따져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환산하는데, 통상 이 같은 환산비율이 금리보다 높아 임대인에게 유리하다. 당연히 정부는 서민의 부담을 키우는 부작용을 잘 따져 전세대출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부가 어려우면 보증비율과 전세퇴거자금 대출 한도 상향 두 가지는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문제는 전세가격과 월세가격이 동시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월세가격지수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동반 상승했다. 실제 서울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전용 198㎡는 지난달 75억 6,000만 원에 전세 계약돼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고, 한남동 나인원한남 전용 206㎡는 월세 3,000만 원에 계약되면서 최고 월세액을 새로 썼다. 지금은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로, 전세대출을 조일수록 월세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서울의 높은 집값은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치솟는 집값을 조속히 잡을 수 있는 공급 확대 방안을 서둘러 치밀하게 마련해 알림으로써 시장 불안 심리를 잠재워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