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된 원세훈(62) 전 국정원장 측이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거기록이 2만페이지에 달해 아직 파악이 덜 됐다"며 "공소사실에 작성된 원 전 원장의 업무방침부터 다투는 부분이 있다. 추후 다툴 내용에 대해 정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상에서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올리도록 하고 이같은 게시글에 대한 찬반 표시를 하도록 지시하는 등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국정원 직원들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올린 대선 관련 글은 73건, 정치·선거와 관련된 글은 모두 1900여건으로 파악됐다. 또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정치개입으로 파악된 찬반 표시의 합계는 1700여회로 집계됐다.
앞서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여러 죄에 해당하는 '상상적 경합'으로 보고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을 동시에 적용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정치와 관련된 글과 선거와 관련된 글이 작성된 시기와 내용, 클릭 수 등이 다른데 상상적 경합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선거법 위반은 특정한 하나의 선거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대선에 대해서만 기소한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변호인은 "이 사건에 대한 기록도 방대하고,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정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국정조사에서 다뤄지는 이 사건 댓글의 범위가 중복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법부와 입법부가 중복 진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기 때문에 준비기일은 계속 진행하되 국정조사가 끝나는 8월15일 이후에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토록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기소된 김용판(55)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변호인 측의 요청으로 11일로 연기됐다.
한편 원 전 원장은 이와 별도로 황보건설 황보연(62·구속기소) 대표로부터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는 10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김우수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