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건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특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상임위를 거쳐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하는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부분 정부안과 여러 의원의 법안을 합쳐 위원회 대안 형태로 본회의에 회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의원들은 타 의원들에 비해 현저히 많은 대표발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19대 국회 개원 후 1년여 지난 5일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대표발의 법안을 통과시킨 의원은 30여건을 통과시킨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다. 다만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은 대부분이 정부조직개편 관련 개정안으로서 올해 초 원내대표 시절 새누리당 당론으로 발의했던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의 경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대표발의 법안을 통과시킨 이는 민주당 3선 김우남 의원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은 19대 국회 들어 관상어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안, 어촌어항법 개정안, 한국농수산대학 설치법 개정안, 임업 및 산촌 진흥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10여개 법안을 통과시켜 1위에 올랐다.
김 의원에 이어 새누리당 문정림·윤명희·이명수 의원 등이 대표발의 법안 다수 통과 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의원은 법안통과 면에서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통상적으로 의원들은 법안을 발의한 뒤 다른 업무에 시달리느라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 의원은 법안을 대표발의한 뒤 상임위원회 내 처리 상황을 꼭 확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평소 자신이 발의한 법안과 관련된 상임위 의원들에게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법안 통과를 위해 정부 쪽과도 꾸준히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 본인이 농식품위 법안심사소위 야당간사인 점도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 사례처럼 개인의 노력이 주를 이룬 경우도 있지만 정치권에선 대표발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급선무라는 후문이 나돈다.
정치권에 따르면 대표발의법안을 무난히 통과시키려면 우선 다른 당 의원들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 당론으로 발의하겠다며 머릿수로 밀어붙이겠다고 나서면 다른 당 의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특히 야당의 경우 당론 발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평이 많다.
'별로 중요한 법안이 아니니 처리해 달라'며 상대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다. 이 경우 상대당 의원들이 경계심을 늦추게 되고 그 결과 해당 법안이 순조롭게 입법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치게 많은 법안을 발의하는 것 역시 자칫 타 의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입법에 관한 욕심이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특정 의원이 입법 면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면 질투를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주자급이나 중량급 의원들은 상대당으로부터 견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대선주자급 의원이 특정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결과 법안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경우 상대당으로선 반길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한 유력 의원이 1년 가까이 준비해온 의안을 통과시키려 총력을 기울였지만 상대당과 의견 조율에 실패하면서 결국 고배를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주자들의 입법활동이 부진하다는 속설은 상대당의 견제심리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