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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감원 탁상행정이 만들어 낸 '블랙컨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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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감원 탁상행정이 만들어 낸 '블랙컨슈머'
  • 박기주 경제부 기자
  • 승인 2013.04.18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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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의 탁상공론(卓上空論)이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를 양산해 내면서 애꿎은 일반 보험가입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보험사를 언급하며 처음 거론한 말은 '민원감축'이었다. 이후 민원 건수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민원이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보험사가 애초에 소비자들을 제대로 관리하라는 말인데, 소비자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보험금 지급부터 설계사에 대한 불만까지 보험사에 할 말이 많은 소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 원장의 말은 분명 이런 소비자들의 이익을 증대하고자 한 말이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같은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달콤한 열매는 엉뚱한 사람들이 맛보고 있다.

'블랙컨슈머'라는 이름의 악성 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가 바로 그들이다.

최근 이들에게 최 원장의 지난달 "보험 민원을 대폭 줄이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은 강력한 무기다. 보험사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는 소비자가 부쩍 늘고 있다. 보험사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녀보험 2건을 가입한 한 소비자는 최근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다른 곳의 보험을 찾아보니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며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돌려주지 않으면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고 요구했다. 원칙상 돌려줄 수 없기에 현재 이 고객의 요청은 보류 중에 있지만, '민원 압박'을 받고 있는 해당 보험사는 어찌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다.

블랙컨슈머들이 이같이 '금감원 민원'을 무기삼아 원칙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게 되면 일반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여러명의 돈을 모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는 뜻의 '십시일반(十匙一飯)'이 기본원칙인 보험업의 특성 상, 블랙컨슈머가 맛보는 달콤한 열매도 당연히 일반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민원을 줄이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민원의 민원 숫자 그 자체를 줄이는 건 블랙컨슈머를 양산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민원이 들어오면 보험사는 금감원으로부터 빨리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보험금 지급 또는 환불 사유가 아님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줘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입소문을 타게 되면 너도나도 같은 방법으로 달려들게 돼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미 최 원장의 발언 이후 주요 보험사들에 걸려오는 민원 건수는 평소보다 30%가량 증가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음에도 민원이 증가하는 건 블랙컨슈머 확대 현상이 이미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진정 금감원이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책상에서 숫자놀음만 할 것이 아니라, 블랙 컨슈머로부터 무고한 보험가입자를 보호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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