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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농협은행과 외환은행은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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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농협은행과 외환은행은 닮은 꼴
  • 정일환 기자
  • 승인 2013.03.2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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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은 곧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시스템의 위기가 온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지난 18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금융에서는 노사간 합의든, 소비자와의 약속이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 말을 뱉은 바로 다음 날,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금융의 '신뢰'를 뿌리째 뒤흔드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19일에는 외환은행이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받았고, 20일에는 농협과 신한은행 등에서 전산마비 사태가 일어났다.

천문학적인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가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는다거나 사이버테러에 노출된다는 것은 고객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 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고객 불안을 달래는 방법으로 '거짓말'을 택했다는 점이다.

우선 외화은행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알려지자 "압수수색 받은 적 없다"며 하루종일 발뺌을 하다 뒤늦게 시인했다.

19일 외환은행은 검찰이 들이닥치자 공식 자료를 내고 "2주 전 론스타 시절의 대출가산금리에 대한 기관경고 및 임직원 징계 사항과 관련해 자료 협조 및 사실확인 차원에서 검찰이 방문한 것으로 압수수색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외환은행측은 자신들의 이 같은 해명에 검찰이 "우리가 그리 한가한 사람들이냐"며 코웃음을 치는데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늦게야 "상황파악이 다소 늦어 초기대응이 미진했다"며 말을 바꿨다.

압수수색으로 고객이 불편을 겪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압수수색이 아닌걸로 믿었다가 은행장까지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객들의 마음이 어지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외환은행 임직원들에게 고객들의 불편한 심기는 관심밖인 듯 하다.

이튿날 발생한 농협의 금융거래 마비 사태 또한 거짓해명으로 화를 키웠다.

농협은 전산마비가 발생초기 고객과 언론의 문의가 빗발치자 "바이러스 예방 차원에서 랜선만 뽑았다"는 어이없는 해명으로 공분을 샀다. 일선 창구에서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한 고객들의 항의가 쏟아지는데도 '눈가리고 아웅'식 버티기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농협 전산 장애 관련 이해 자료'를 발표하고 본부와 영업점 일부 PC가 마비됐고, 이로 인해 랜선을 분리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농협의 거짓말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농협은 4시 경 내놓은 자료에 영업점 업무가 중지됐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되레 인터넷 뱅킹이 정상이라는 것만 강조하며 마치 별일 없다는 듯 시간을 보냈다.

5시40분경 나온 최종 발표는 더욱 가관이다. '전산거래 완전 정상화'라는 내용으로 채워진 이 자료에도 일선창구와 고객들의 아우성은 눈을 씼고 봐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농협의 공식기록에는 2013년 3월20일 발생한 금융마비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게 된 셈이다.

농협은 지난 2011년 4월 전산망 마비 사태로 한달여간 영업이 중지됐던 곳이다. 이후 대대적인 IT시스템 보완을 했다고 자랑했다.

농협입장에서는 악몽과도 같았던 전산망 이상이 2년을 못넘기고 또 다시 발생했다는 현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정확한 상황을 알려 피해확산을 막았어야 옳다.

전산마비가 발생한지 만 하루가 흐른 21일 오전까지 전 금융권에서 아직 전산망 복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은 농협뿐이다. 하지만 농협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은 신뢰다. 신뢰가 흔들리면 시스템이 위기가 온다. 굳이 금융위원장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에 인수돼 곧 은행 자체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농협은행은 출범한지 1년여만에 지주사 회장 퇴진이 논의되고 있다.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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