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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름다운 자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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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름다운 자살은 없다
  • 엄정애 기자
  • 승인 2013.03.19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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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의 자살(自殺)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하여 불행히도 OECD 가입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 통계를 기준으로 OECD 가입국 전체 자살률 평균의 세 배나 웃도는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IT 세계강국 1위인 나라, IQ지수 1위인 나라, 하지만 학교폭력이 자살원인 7위인 나라 역시 대한민국이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승부조작에 관련된 선수의 자살, 건축현장 식당비리와 은행 대출 비리에 연루된 대학총장의 자살, 결백을 주장하는 공무원의 자살, 성적과 학교의 스트레스·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한 학생의 자살 등 자살이 마치 마른들판에 불 번지듯 잇따르고 있다.

앨프레드 알바레즈가 쓴 '자살의 연구'에서는 자살이란 결국 치명적으로 불발된 '구조의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자살은 자살자 자신이 행위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자살자가 속한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아무리 학교 폭력으로 인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부모님께, 학교에 말해도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 때 이에 대한 구조의 외침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그렇게라도 하면 이 사회가 학교 폭력으로 고통 받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믿어줄 거 같아서 자살 사이트에 가입을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년과 20~30대의 자살은 심각한 수준으로 속수무책인 재앙 수준인데 자살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10~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일 정도이다.

심지어 거의 제약 없이 인터넷에는 자살자를 모집하고 방법까지 알려주는 사이트가 공공연한 게 현실이고, '자살을 다시 생각하는 모임' 언뜻 누가 보면 자살을 다시 생각하고 예방하는 사이트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건의 이면에는 자살포기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살을 결행하는, 실로 무서운 현실이다.

시대의 고금과 바다의 동서를 막론하고 자살이 아름답게 노래된 적이 없고,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순리를 거스르는 역행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회적 인사나 연예인의 자살은 가뜩이나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 자살 풍조를 더 자극하며 '나도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자살률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살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자살의 흔적은 생명이 멈춘 유기체의 생화학적 부패와 손상, 자살의 흔적을 수습하는 산 자의 눈과 코와 마음에 충격만 남기는 불쾌한 현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 아프고 절박한 사정이 있다면,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아서도 시련을 헤쳐 나갈 방법이 없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살을 결행하는 순간, 공감은 사라지고 책망만 남는다. 사정이 아무리 절박해도 자살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해도 이를 헤쳐 나갈 방법은 있게 마련이고 당초에 생각한 아름다운 자살은 결단코 없다.

<경기 가평경찰서 경무계 경사 원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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