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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신재형저축 출시, 눈치보기 급급한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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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신재형저축 출시, 눈치보기 급급한 은행들
  • 이예슬 기자
  • 승인 2013.03.11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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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수정 횟수를 열 번 쯤 세다 그만뒀다. 1995년 재원 부족 등을 이유로 폐지됐다 18년 만에 부활한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에 관련된 기사였다.

출시 전날인 지난 5일 전국은행연합회를 통해 전달된 보도자료가 도착한 것은 오후 3시25분께. 기사를 출고하고 나서도 각 은행에서 금리를 올렸다는 메일과 전화가 폭주해 데스크에 기사를 수정하겠다고 요청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금리전쟁'은 천태만상이었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을 통해 부지런히 경쟁 은행의 금리를 확인한 후 기본 금리를 0.3%나 상향 조정하는가 하면 선착순 특판 금리를 내세웠다가 금융당국에 의해 제재를 당한 은행도 있었다.

A 은행은 타 은행에 비해 눈에 띄게 낮은 기본 금리를 제시해 놓고는 신용카드나 정기예금 등 다른 거래를 할 경우 주어지는 우대 금리의 폭을 0.6% 적용해 최고금리를 간신히 4%대로 맞추기도 했다.

심지어 출시 당일인 6일 이후 낮은 금리로 가입자를 유치하기 힘들자 슬그머니 금리 조정을 한 은행도 나타났다. B 은행의 경우 기본금리를 0.4%나 높여 최고 금리 4.6%를 내세우는 한편 출시 전날 특판 이벤트로 금융당국의 제지를 받은 C 은행도 기본금리에 우대금리를 더한 최고 4.6%를 맞췄다.

D은행은 기본 금리를 3.4%로 설정했다가 출시 당일 은행연합회 금리비교 사이트에 고시한 기본적용이율을 4.1%로 수정하기도 했다.

과거처럼 10%대를 넘나드는 고금리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로 접어든 지금 4%대 중반에 비과세 혜택을 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금융 소비자들이 재형저축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특히나 재형저축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출시를 서둘러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형성지원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상품이다.

은행이 재형저축을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당장 수익이 나는 상품이 아닌데다 3%대에 불과한 일반 정기예금에 비해 1%나 높은 금리를 얹어주는 상품이기에 역마진의 우려도 있다.

하지만 낮은 금리를 써놓고 눈치만 보다가 경쟁 은행이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한 것을 보고 뒤늦게 부랴부랴 금리를 수정하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얌체같이 보일 수밖에 없는 처사다. 금리전쟁에서 눈치를 보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는 것 자체가 재형저축에 국민들이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더 줄 수 있었는데 몸 사린 것 아니냐'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만약 더 높은 금리를 적어낸 은행이 없었다면 해당 은행은 금리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금리를 유지했을 것이 자명하다.

금융산업의 전반적인 침체로 먹을거리가 없어 고민인 은행들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경기부진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부실대출 수도 크게 늘어 감수해야할 리스크도 커졌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은행들은 대부분 외환위기 당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 회사들이다.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위해 정부까지 나서 적극 추진하는 상품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눈치작전을 쓰는 은행들의 얕은 속셈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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