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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선용 '쇄신'에 배신당한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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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선용 '쇄신'에 배신당한 국민들
  • 김민자 기자
  • 승인 2013.01.04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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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여야는 정치쇄신의 흐름을 타고 경쟁이나 하듯 '특권 폐지'를 앞다퉈 주장했다. 상대 당이 내놓는 카드를 보고 더 큰 카드를 내밀었다. 누가 더 '특권'을 내려놓는 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국회의원 겸직과 영리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하는 연로회원지원금(국회의원연금)을 폐지하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세비 30% 삭감, 불체포특권·면책특권 축소 등 국회의원 특권폐지 법안이 이때 제출됐다.

여기에 국민들은 반신반의 했고, 의원들도 다소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의원은 "자기 월급 깎겠다고 결의하면서 박수까지 쳤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했다. 아니,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토록 '변화'와 '쇄신'을 부르짖던 의원들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새누리당은 승리의 도취감에, 민주통합당은 패배의 아픔에, 저마다의 이유 속에 정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1일 통과된 예산안에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128억2600만원을 지원하는 안이 함께 포함됐다. 특권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예산에 편성했다는 궁색한 변명이 뒤따랐다. 세비 삭감은 예산 심사 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쪽지예산' '호텔예산' 등 새해 예산을 둘러싼 비난 여론이 커진 상황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외유성'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출장지가 '예산 시스템 시찰'이라는 목적과 거리가 먼 남미와 아프리카라는 점, 출국 시점이 사상 초유의 '해넘이 예산'을 통과시킨 직후라는 점 등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언젠가 한 번쯤 보았던' 기시감이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쇄신책을 내놓았고 선거가 끝나면 사실상 대부분이 용도 폐기됐다.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감이 "그러면 그렇지…"로 바뀌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국회는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는 대신 국민들에게 또다시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새정부가 출범하는 새해, 새 모습을 기대했지만 정치권의 구태는 그런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정치권은 국민을 우롱하는 구태에서 제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유권자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줄 것인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 사태와 관련 국민께 정중히 사과하고 당초 약속했던 정치쇄신 계획을 차질없이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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