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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안희정 지사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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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안희정 지사의 오판
  • 유효상 기자
  • 승인 2012.05.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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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지도자의 오판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컬럼리스트 토머스 J. 크라우프웰이 지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미국 대통령들의 잘못된 선택!'에 따르면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재앙에 가까운 비극을 불러왔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부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위스키에 과세를 했다가 폭동이 일어나 명예에 치명상을 입었다. 존 F 케네디는 피그스만 침공작전 실패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고 조지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지시해 수많은 미군 사망자와 이라크 민간인의 죽음을 불러왔다.

이 책은 대통령들의 오판을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을 재검토하고, 어떤 선택권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 교훈을 전해준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통령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210만 도민들이 살고 있는 지방정부의 수장이다. 안 지사 역시 지방정책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안 지사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을 잘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도지사 취임 후 '3농혁신'과 '행정혁신'의 필요성을 주장해 도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도민들도 안 지사 연설을 들으면 희망을 갖게 된다. 아직까지는 크게 흠집이 될 만한 실수도 없다.

하지만 왠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충남도는 지난해 12월 감사원으로부터 도의원에 개인적으로 몇 억씩 주던 소규모 숙원사업비 집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따라 안 지사와 참모들은 소규모 숙원사업비를 배정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의원별로 설득했고, 또 법과 원칙에 위배되니까 의원들이 당연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반발은 의외로 거셌다. 그동안 지역구의 작은 사업을 해결해왔던 소규모 숙원사업비가 사라진다니 힘이 빠져버린 것이다. 의원들이 반발하자 도는 도지사 시책추진보전예산에서 사업 타당성을 따져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증폭됐다.

급기야 의원들은 지난 17일 개회된 제251회 임시회에 제출된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삭감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 실제 각 상임위원회별로 복지, 인건비 등 국비와 매칭되는 필수경비까지 대폭 삭감했다. 그러자 이번엔 도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일부 단체들은 의회 문을 부수고 들어와 회의를 방해했고 의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퍼부었다. 도민의 대의기구인 의회는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도와 의회의 갈등은 도민들의 격노로 이어졌다.

집행부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 필수경비까지 대폭 삭감한 의원들도 문제지만, 원인을 제공한 안희정 지방정부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안희정 지방정부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부터 오판을 했다. 감사원 지적은 지난해 12월 말경이었고 그동안 5개월 가까이 의원들을 설득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의원들만 밀실에서 설득하면 된다고 판단했고 이 과정에서 도민 여론은 안중에도 없었다.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을 벌이기 이전에 이를 공론화시키고 도민들의 여론을 모아 의원들과 담판을 벌이는 것이 민주적 절차였다.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절차를 밟았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안 지사가 이를 간과했다. 밀실에서 의원들과 적당히 타협하던 과거 보수 행정부를 그대로 답습한 건 아닌지 안 지사 스스로 반성해볼 일이다.

다행히 도와 의회가 서로 한 발 물러서 봉합수순을 밟고 있지만, 만약 의회에서 추경안 3027억원 중 복지예산, 인건비 등에 쓰일 3분의 1 정도 삭감을 강행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이 떠안았을 것이다.

안 지사는 젊다는 게 강점이다. 이미지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도민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편견, 오만, 독선, 자아도취 등이 스스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걸 항상 경계해야 한다. 모든 지도력은 도민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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