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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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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이해
  • 안명옥 기자
  • 승인 2019.07.10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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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원석 한중문화연구회장(중문학박사), 더불어민주당 고문 14대 국회의원.

오늘날 중국은 한반도의 45배, 일본의 25배에 달하는 넓은 땅에 14억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는 대국이다. 인구면에서 세계 제일이고 국토의 면적으로는 러시아에 이어 두번째로 꼽히고 있다. 

 

캐나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람이 살수 없는 통토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국은 캐나다보다 넚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국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한국 일본 등과 같이 영토와 국민, 주권의 세가지 요소를 갖춘 국가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인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말이 국가 개념으로 쓰쓰인 것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즉, 상고시대부터 황하유역에 도읍을 세운 나라들은 항상 그들이 사는 지역을 중화, 중원, 중국 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여기에서 중은 사방의 중앙에 위치한다 는 뜻이므로, 중화는 사방의 중앙에 위치하여 문화가 가장 빛나는 곳 이란 뜻이며, 중화는 사방의 중앙에 위치한 대국 이란 의미를 가진다. 

 

또 중원은 사방의 중앙에 있는 넓은 곳 이다. 따라서 중국은 온 천하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문화가 가장 발달된 지역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중국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인 국가 명칭으로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중국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국가 개념으로서가 아닌, 어떤 훌륭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문화적 범주로 인식 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자신들의 주변에 살고 있던 민족들의 대한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들의 주변에 있는 민족들의 사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그 동쪽에 있는 민족을 동이, 서쪽에 있는 민족을 서융, 남쪽에 있는 민족을 남만, 북쪽에 있는 민족을 북적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앴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사방의 중앙 이라는 개념도 황하를 중심으로 한 일부지역에 불과했지만, 유구한 세월에 걸쳐 그들의 국경이 점차 확대 되면서 그 의미도 점차 세계의 중앙으로 확대되어 나간 것이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국가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1911년 10월10일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세워진 중화민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1949년 10월1일에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이다

중국의 국기는 오성홍기 이다. 국기의 전체적인 모양은 직사각형이며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3:2이다.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공모한 3천여점의 도안 중에서 선정한 이 국기는 붉은 바탕에 황색으로 된 큰 별을 중심으로 작은별4개가 나란히 둘러싸고 있는 도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바탕의 붉은 색은 혁명의 피를 상징하고, 황색은 광명을 산징한다. 그리고 큰 별은 중국공산당을 상징하고, 4개의 작은 별은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당시 중국 국민을 구성하고 있던 노동자 계급, 농민계급, 도시 소자산 계급, 민족 자산 계급의 네 계급을 상징한다. 

 

이는 혁명 열사의 숭고한 피로 건국된 중국을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모든 중국인들이 일치단결하여 광명의 미래로 이끌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장도 오성홍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상징이다.

 

이 국장은 중앙에 위치한 다섯개의 별이 천안문을 비추며, 그 주위에는 이식 무늬를 새긴 둥근 테가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중앙에는 작은 톱니바퀴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천안문은 중국의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고, 이삭과 톱니바퀴는 중국 국민의 대다수를 형성하는 농민과 노동자를 상징한다.

 

중국의 국가는 1935년 전한이 가사를 쓰고 섭이가 곡을 붙인 (의용군행진곡)이다.

(의용행진곡)은 원래 당시 유행하던 영화(풍운아녀의 주제가로 창작된 것인데,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게된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에는 당시 일본군의 침략에 저항하는 중국인들의 결연한 기개와 조국에 대한 열정적인 애정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1949년 9월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시 세계적인 화가 서비홍의 건의를 받아들여(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채택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길 원치 않는 사람들아!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건설하자! 

 

지금 중화민족은 가장 위험한 때가 닥쳐왔다.

 

 모든 사람은 최후의 함성으로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우리모두 일치 단결하여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 전진! 전진!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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