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예방교육 형식적…외주화 개선, 정규직화 해야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어 이렇게 모였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서 김포공항 미화원이자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인 손경희(51·여)씨는 이 같이 외치며 삭발을 했다.
손 지회장이 "인간 대접을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삭발까지 하게 된 이유는 관리자들의 횡포와 열악한 근무 환경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김포공항 미화원은 약 140명이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 속에서 최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겪을 뿐만 아니라 관리자들의 폭언과 비하, 성추행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국내선·국제선 등 김포공항내 모든 시설의 청소를 담당한다. 주말도 명절도 없이 하루 11시간 근무하며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식으로 노동을 반복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휴식시간은 화장실에 딸린 창고에서의 30분이 전부다. 잠시 쉬려고 하면 관리자는 눈치를 주고, 시말서를 쓰라고 압박하기 일쑤다. 최근에 휴게실을 개선해달라고 업체에 요구하니 오히려 앉지도 못하게 의자까지 치워버렸다.
한 미화원은 "커피 한잔만 마셔도 시말서, 동료들과 잠시 얘기만 해도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5분도 쉬는 꼴을 못 본다. 소장, 본부장은 '그렇게 쉬고 싶으면 집에 가라'고 수시로 압박했다. 시말서를 1년에 3번 작성하면 해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손 지회장은 공항에서 30년을 종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최저임금과 망가진 몸뿐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손씨는 "탑승객이 몰리면 면세점 쇼핑백만으로도 100ℓ 쓰레기봉투 150개가 가득 찼다. 손목, 허리 등 안 아픈 사람이 없다"면서 "그렇지만 임금은 기본급 평균이 약 126만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50~60대 중년 여성이 대다수인 이들은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폭언과 성희롱, 성추행까지 견뎌야했다.
손씨는 "처음 입사하고 간 회식에서 당시 본부장이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혓바닥이 입으로 쏙 들어왔다"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로부터 추행과 술접대 강요를 비일비재하게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미화원인 A씨는 "관리자에게 노래방에서 가슴에 멍이 들도록 성추행을 당해서 자살기도까지 했다"며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잘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게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관리자는 미화원도 서비스직이라며 잘 웃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를 하기도 했다.
직장 내에서 인권 유린을 겪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는 실정인데, 50세 이상 피해자가 많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보인다.
서울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2013년 8.9%(236건)에서 지난해 22.0%(508건)으로 2.5배 증가했다. 정규직의 경우 30~34세가 26.1%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50대 이상이 31.7%로 가장 높았다.
이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사업장 내 지위가 취약한 중고령층 여성들이 직장 내 성희롱에 더욱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즉 여성인데다 비정규직이며 나이도 많다는 점을 약점으로 삼아 고용자나 상사 등이 악질적인 '갑질'을 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꼭 필요한 직군임에도 소위 '최하위 계층'으로 인식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편견이 이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하는 것이다.
서울 한 사립 대학교 미화원 김모(54·여)씨는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미화원이 돌아다니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숨어 있으라고 한다"며 "사람 취급을 안 한다.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어서 식사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급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에서 청소노동을 하는 안모(55·여)씨는 "관리소장이 평소 '예쁘다, 멋지다'라는 발언을 자주 하더니 어느 날부터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옆구리와 배를 찌르고 도망가기도 했다"며 "비슷한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너무 힘들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고 당할 것 같아서 마냥 참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통상 공항, 대학 등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이 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 이 업체가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간접고용으로 일하게 된다. 계약은 대개 1~2년 단위로, 계약기간이 끝나면 청소노동자들은 바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김포공항 사태도 공항공사 퇴직자들이 낙하산으로 용역업체인 지앤지(G&G) 본부장으로 영입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비롯됐다. 본부장은 서류상 인력파견 용역업체의 직원이지만 공사 출신이다 보니 업체가 간섭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청소노동자 전반에 대한 구조적 고용 안정대책을 세우고 사회적 편견을 깨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나이가 많고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약점으로 삼아서 관리자들이 '아줌마 주제에', '못 배웠으니 청소일이나 하지'라는 등의 막말을 일삼고 성추행까지 한다"며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주된 이유는 간접고용으로 인한 고용불안 때문이다. 특히 생계수단으로 일하는 50~60대 노동자들은 재취업이 어려운 탓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기관에서 흔히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다. 이는 개인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며 "이번 김포공항 사태뿐만 아니라 구의역 사고도 잘못된 외주화 정책에서 비롯됐다. 항피아, 관피아 등 부문별한 낙하산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소노동이 비핵심업무라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으로 돼있는데, 공항 이용객 대부분이 화장실이 더러우면 가장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즉 청소노동은 핵심업무나 다름없다. 애매한 기준으로 핵심, 비핵심 업무 나누지 말고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옳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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