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박모(33)씨는 최근 운전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숨이 '턱' 막혀오는 무더운 날씨로 인해 도저히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도 식지 않는 무더위로 에어컨을 켜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여름을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폭염도 예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일찍부터 무더위가 찾아왔을 뿐 아니라 지난 6~7월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더 높게 관측됐다. 8~9월 또한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예상됨에 따라 예년과 다른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26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첫 폭염주의보는 5월20일 발효됐다. 2008년 폭염특보제가 도입된 이후 5월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은 7월10일이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5월19일 31.9도, 5월20일 31.6도를 기록하는 등 일찌감치 30도를 웃돌았다. 올해 5월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긴 날은 총 4일로 평년(0.5일)보다 3.5일이나 많다. 올해 서울은 1932년 이후 84년 만에 가장 뜨거웠던 5월 중순으로 기록됐다.
전국도 서울만큼 빠르게 달궈졌다. 5월18~23일 전국의 평균 최고기온은 28.4도로 평년(23.9도)보다 4.5도 높게 나타났다. 이는 7월 중순의 평균 최고기온(28.4도)에 해당한다. 절기상 6~8월을 여름으로 볼 때 올해의 여름은 사실상 5월 중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올해 6월과 7월도 평년을 웃도는 기온을 보이며 무더위가 계속됐다.
6월의 평균기온은 22.3도로 평년(21.2도)보다 1.1도 높았다. 1973년 관측 이래 2013년(22.6도), 2005년(22.4도)에 이어 세 번째로 평년기온이 높았다. 6월 전국의 일조시간 역시 193.4시간으로 평년 181.4시간(1981~2010년)보다 12시간 많게 나타났다.
7월은 평균기온(24.3도)이 평년(23.8도)과 비슷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예년과 다르게 폭염특보가 장시간 이어지면서 체감상으로는 불볕더위가 더욱 거세게 느껴지고 있다.
올해 서울에 발효된 폭염특보는 5월20일, 7월8일과 19일이다. 그중 5월과 지난 8일 발효된 폭염특보는 사흘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19일 오전 11시 서울에 발효된 폭염주의보는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에 발효된 폭염주의보는 10일과 11일 이틀이 전부였다.
이처럼 폭염이 빨라지고 강해지면서 온열질환 환자도 늘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5월23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온열질환 신고건수는 53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0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사망자도 5명이나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7월24일까지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같이 폭염이 빨라지고 강해진 이유는 우리나라가 이동성고기압의 영향권에 들면서 남쪽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유입돼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낮 동안의 강한 일사로 인해 기온이 큰 폭으로 올라간 것도 원인이다.
특히 5월에는 중국 북부와 몽골에서 고온건조한 공기가 우리나라 상공으로 유입됐고 우리나라 부근에 정체한 고압대와 낮 동안의 강한 일사로 인해 고온 현상까지 나타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폭염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이 밖에도 지표면을 가열하는 복사열과 도심효과 등이 기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최고기온은 30도지만 도심의 복사열까지 더해지면 35~40도까지 치솟을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의 무더위는 장마가 끝나는 8월 1~2주에 절정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9월에도 평년(20.5도)을 웃도는 기온으로 더위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기상학회장인 손병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구온난화와 함께 급격히 이뤄진 도시화 탓에 기온 상승 폭이 세계 평균보다 크다"며 "예전에는 8월 중순이면 날씨가 선선했지만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8월 한낮 온도가 30도를 웃돌면서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더위가 빨리 오고 늦게까지 계속되는 등 봄이 사라지고 있다"며 "과거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여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