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찰이 5년 전 대학 학생회 간부로 활동한 여성을 국가보안법(국보법)과 관련해 조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가에 때 아닌 공안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D대학 휴학생인 오모(25·여)씨는 지난달 말 경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오씨에게 "북한 서적과 관련해 조사해야 할 것이 있다"며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이틀 뒤 오씨의 집 근처로 찾아온 경찰 3명은 오씨를 경기의 한 경찰서로 데려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D대학 모 학생회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한 서적이 나왔는데 그 옆에 꽂혀있던 서류에서 지문이 발견됐다"며 책을 읽은 적이 있는지, 누가 읽을 것을 권유했는지 등을 추궁했다.
그러나 오씨는 5년전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했을 뿐 현재 학교를 휴학한 상태다. 학생회 활동을 안한지도 3년이나 지났다.
오씨는 경찰이 언급한 서류에서 자신의 지문이 나왔다는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경찰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하며 협조했다.
오씨는 "몇년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면서 서류를 작성했는데 거기서 내 지문이 나왔다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국보법과 관련해 조사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보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별칭이 붙은 법 아닌가"라며 "조사받는 내내 두려웠다"고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대학가에서 북한 서적이 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와 참고인 조사를 한 것"이라며 "북한 서적 근처에 있던 서류를 지문 감식 한 결과 4~5명의 지문이 나와 관련 절차를 밟은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회 관련 서류는 이적성과 위법성이 없어 해당 조사는 곧 종결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최근 또 다른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조사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10여명은 지난 10월14일 오전 8시께 H대 졸업생 박모(29·여)씨 등 4명에 대한 자택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조사를 진행했다.
박씨는 재학 시절 이적이념서클을 만들고 그곳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혐의로 조사 받았다. 그러나 박씨는 2006~2007년 학생회 활동을 했을 뿐 이적단체를 만든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박씨는 "경찰은 수첩에 끄적여 놓은 메모나 학생회 계획서를 작성한 것 모두를 범죄인 것처럼 여겼다"며 "심지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단체의 외부강사를 초청해 강연토록 한 것도 그런 식으로 취급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21세기에 학생회 간부를 하면서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활동을 한 내가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찬양·고무' 등의 국보법 위반자가 되는 현실이 어리둥절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박씨는 "경찰과 검찰이 경쟁적으로 허술한 간첩사건, 공안사건들을 조작해 내고 있다"며 "아직도 국보법의 칼날을 들이대며 공안정국을 조성하는데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