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어온 정기 '수요집회'가 14일로 1000회를 맞는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매주 진행해 왔다.
지난 1995년 8월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집회를 취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한 차례도 수요집회를 중단한 바 없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희생자 추모 형식으로 집회를 대신했다.
2002년 3월13일 500회 집회가 단일사안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집회'로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후 잇따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 첫 증언으로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위안부 문제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가 국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위안부 공개 증언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김 할머니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당시 당했던 일이 하도 기가 막히고 끔찍해 평생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살아왔지만 국민 모두가 과거를 잊은 채 일본에 매달리는 것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며 "내가 눈을 감기 전에 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위안부 공개 증언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목숨처럼 여기던 정조관념 때문에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는 등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같은해 12월 2일에는 대구에 사는 문옥주 할머니(당시 67세)가 두 번째로 공개 증언을 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92년 한국 정부는 대한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신고를 접수했다. 접수는 본명이 원칙이었지만 필요시 익명으로도 받았다. 또 신고된 사항은 신고인의 허가 없이 일절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일본군에 정신적, 육체적 고초를 겪고도 외부에 알리는 것은 경계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제사회, 日 정부에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등 성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사항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을 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다.
결국 일본 정부가 나서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20년 가까이 해 왔지만 일본 정부는 이같은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정대협과 세계 여성·인권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국제사회가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해결을 권고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1993년 6월 '일제하 종군위안부 생활안정지원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빈 세계인권회의 결의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다.

같은해 8월에는 일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방장관 담화문'을 발표해 '위안부의 존재,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는 옛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인 관여, 위안부 모집에 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또 1996년 3월 4일 발표한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일본의 위안부 에 대한 행위를 강제노동금지조약에 위반하는 성노예로 특정지을 수 있다'는 내용이 수록했다.
1998년 8월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 및 책임자 처벌과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맥두걸 보고서'를 채택했다.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히로히토 일본 국왕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2003년 7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최종결의문에서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2007년 한 해 동안 미국과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 4개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같은해 일본 시의회에서도 일본정부의 성실한 대응을 촉구하는 의견서가 채택되는 성과를 이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 남은 할머니는 65명…아직 갈길 멀어
2011년 12월 현재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4명이다. 하지만 생존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줄어들고 있다. 올들어 14명이 별세해 현재 생존자는 65명이다.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데다, 부양가족 없이 홀로 지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생존한 피해자들의 연령대도 상당히 높다. 최고령자인 이순덕(93)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 80대 이상이다. 평균연령도 86세이다.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일본 정부는 1993년 처음으로 정신대 모집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을 핑계로 국가 차원의 배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대협 관계자는 "'위안부'라는 끔찍한 인권유린 범죄의 주체가 일본 정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동안 책임을 회피하고 부인해 왔다"며 "일본은 입법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14일 열리는 수요집회에서는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가 건립된다. 평화비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소녀의 모습을 높이 약 120㎝의 크기로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당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