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금융기관을 향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길 바란다.”라고 사실상 질책성 경고장을 보냈다.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등 이자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 기업 투자 등을 통해 실물 경제에 기여하는 생산적 자금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매우 엄중해 보인다.
올해 상반기 4대 금융지주가 이자로만 21조 원 넘게 벌어들였고 올 상반기 순이익이 사상 처음 10조 원을 넘어섰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자 놀이’라는 경고가 전혀 과하지 않아 보인다. 오죽했으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들의 이자 장사에 문제를 제기했겠는지 반추하며 귓등으로 허투루 흘려들어선 곤란한 사안이다. “왜 돈을 많이 벌면 사회적 질타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억울해만 할 것이 아니라, 금융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 여유 자금이 부동산이 아니라 미래 신산업, 벤처, 스타트업 등으로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금융 기업들이 나서야 나라의 신성장 동력을 키우고 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정부도 ‘관치 금융’의 구태(舊態)와 악습(惡習)을 끊고 각종 족쇄(足鎖)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금융그룹들이 선진화 개혁을 단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상반기 중 ‘이자 장사’로만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 수입의 21조 924억 원으로 작년 동기 20조 8,106억 원보다 2,818억 원(1.4%) 증가했다. 통상 금리 인하기에는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빨리 내려 금융사들의 ‘예대마진’이 줄어들어 은행 수익성이 나빠지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자 이익이 외려 늘어난 결과이다. 왜냐면 한국은행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4차례 금리를 내렸는데도 금융사들은 대출금리에 금리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가계대출을 늘리지 말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라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반면 예금금리는 신속하게 낮춰 지난해 하반기 0.5%포인트 안팎이던 주요 은행의 예대금리 차는 최근 1%포인트 중반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금융권의 파렴치한 행태에 힘입어 4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역대 최대인 10조 3,254억 원으로 1년 전 9조 3,456억 원보다 무려 9,798억 원(10.5%↑)이나 불어났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자 이익과 비이자이익이 함께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실적 개선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은행이 ‘이자 장사’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시중금리 하락기에 가계부채와 집값 문제 등을 내세워 대출금리 인상을 주도했던 은행들이다 보니 은행들을 바라다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이같이 전통적인 ‘이자놀이’에 의존하다 보니 글로벌 금융기업들과 겨룰 만한 금융사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만 해도 주요 은행들은 2024 회계연도에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여 왔었지만, 우리 4대 금융그룹은 해외에서 고작 평균 11%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이렇듯 금융지주들은 저비용 예금 증가, 조달 비용 축소 등을 이유로 꼽지만, 그보다는 예대금리차 확대가 주요 요인으로 보인다. 실제 4대 은행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는 작년 상반기 0.53~0.69%포인트에서 올해 1~5월 1.32~1.45%포인트로 벌어졌다. 금리 인하기에 맞춰 예·적금 금리는 떨어진 반면,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주택가격 상승 억제 등의 명분 아래 높은 수준을 유지한 탓이다.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금융회사들이 예금금리만 내리고 대출금리는 낮추지 않아 이익이 급증한 것이다. “가계대출을 줄이라”는 정부의 압박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금융사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 전형적인 관치 금융의 적폐이자 패악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디딤돌·버팀목 대출 같은 정책성 대출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늘린 탓에 금융회사들의 이자 수익은 더 커졌다. 정부에서 대출액의 80∽90%를 보증해주다 보니 떼일 걱정 없이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와 이자를 또박또박 챙긴 것이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이자 수입만 늘려온 셈이다. 정책대출이 필요하다지만 상반기에 늘어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60%가량이 이런 정책성 대출로 정부가 돈을 대신 벌어준 것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이렇게 손쉽게 벌어들인 순이익의 절반을 배당, 자사주 소각 등에 사용한다. 연말 성과급 잔치와 임금 인상도 반복하고 있다. 경기 둔화로 먹고살기 힘든 와중에 이자 부담은 줄지 않은 서민과 자영업자가 금융회사들을 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 리 없다.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매년 최대 실적을 갈아치워 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들은 이자로만 무려 41조 8,760억 원의 이익을 늘리며 전년 대비 1조2,552억 원이나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의 작년 영업이익 32조 7,000억 원보다 9조 1,760억 원 이상 많았다.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은행들이 웃는 사이 내수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팍팍해진 가계 살림으로 1분기 개인 신용카드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다. 금융권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국내 시중은행 계열 카드사 4곳(우리·신한·하나·KB국민)의 연체율은 평균 1.81%로, 모두 전년 동기·전분기 대비 상승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약 8년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2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5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64%로 전월 0.57% 대비 0.07%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47%로 전월 대비 0.04%포인트 증가했고, 기업대출 연체율은 0.77%로 전월 대비 0.09%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95%로 전월 0.83% 대비 0.12%포인트 올랐으며, 이 중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은 1.03%로 1%를 넘어섰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0.82%로 소폭 상승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32%로 0.02%포인트 올랐고, 신용대출 등 주담대를 제외한 가계대출 연체율은 0.94%로 전월 대비 0.08%포인트나 상승했다. 특히, 오는 8월 1일로 예정된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가 시작될 경우 그 여파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가계나 기업은 더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은행이 이자 장사에서 벗어나 내핍과 고통 분담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가계와 소상공인의 고통 완화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7월 28일 금융권 협회장을 소집해 관련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자 장사는 정부가 부추긴 측면도 많았다. 과도한 예대금리차를 문제 삼다가도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가계대출을 억제하라고 압박을 넣어왔다. 하지만 가계대출, 부동산 등 비생산적 영업에만 매달리며 서민과 기업의 신음을 자양분 삼아온 금융권에 근본적 책임이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 위기가 장기화·고착화 하는 경우 손쉬운 ‘안방 이자 장사’에 안주하는 금융사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금융기관들은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수익 기반을 다변화하는 한편 해외시장 개척, 인수합병(M & A)을 통한 대형화 등을 서둘러 글로벌 경쟁력을 대폭 키워나가야만 한다.
작금의 우리 경제 상황은 매우 어렵다. 결국, 금융권으로부터 돈이 산업으로 흐르지 않았고, 혁신경제는 자금난에 숨을 헐떡이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금융의 철학부터 바뀌어야만 한다. ‘예대마진’이라는 전통적 수익구조에서 벗어나, 금융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립해야만 한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은 금융이 본연의 역할인 자금중개와 경제성장 지원 기능을 외면한 채, 부동산담보대출과 가계대출 같은 저위험·고수익 모델에 안주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금융권의 고질적 폐해와 낡은 구각(舊殼)의 정곡(正鵠)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금융권은 자금을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해 산업을 살리고, 경제에 숨과 활력을 불어넣는 금융 본연의 역할이 절실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면 금세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생산적 자금 공급을 늘리려면 규제 유연화가 일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돈은 흘러야 하고, 흘러야 경제가 살아난다. 금융이 제대로 흘러 경제의 핏줄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 마련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산업을 살리는 금융, 그것이 바로 작금의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원동력이자 추동력임을 각별 유념하고 실행으로 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