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차단-구제-홍보' 정책 순차적 발표

금융위원회가 금융·통신·수사정보를 공유해 피싱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는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가칭)을 연내 구축한다.
금융위는 28일 오전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서울 여의도 금융보안원 교육센터에서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개최, '보이스피싱 AI 플랫폼'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경찰청,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 금융업권 중앙회·협회 등이 참여했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보이스피싱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금융위는 지시 이후 10여차례 실무 전문가 회의를 개최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은 현재 개별 금융사들이 운영중인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 인프라다. 참가기관 협의 등을 거쳐 연내 출범할 예정이며, 전 금융권과 전자금융업자, 통신회사, 수사기관 등이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금융사들은 현재 FDS를 활용해 보이스피싱 범죄 의심계좌를 탐지해 지급정지 등 조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한된 사례를 바탕으로 자체 패턴분석 기술 등에 의존해 탐지를 하고 있으며, 범죄자 계좌 등이 탐지돼도 금융사간 즉시 정보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전 탐지·차단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플랫폼에는 전 금융권·통신사·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와 관련된 정보가 '긴급공유 필요정보'와 'AI 분석정보'로 나뉘어 집중된다.
'긴급공유 필요정보'는 피해 의심자 연락처 등 긴급한 보이스피싱 상황에 즉시 대응하기 위해 각 기관간 즉각적 공유가 필요한 정보다. 이들 정보는 가공 작업 없이 즉시 필요한 기관 등에 전달·공유되며 이를 받은 금융회사 등은 계좌 지급정지 등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다.
여러 은행·상호금융기관 등에 걸쳐 대포통장 등을 설치해 범행에 악용하던 범죄자 계좌 전부를 신속하게 지급정지 조치할 수 있어 잠재 피해자 양산을 막고, 범죄 자금 도피처를 신속히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AI 분석정보'는 금융사 계좌 중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의 특징을 분석·파악해 사전에 식별하기 위한 정보다. 최근 계좌개설 내역 등이 해당된다. 이들 정보는 플랫폼에 집중된 후 금융보안원 패턴 분석을 거쳐 전 금융권의 범죄계좌 사전 차단 등에 활용된다.
금융회사·통신사·수사기관 등은 정보를 공유받아 범죄 의심계좌 사전 지급정지, 피해 의심 사전 경고·안내, 범죄 취약 계층 등에 대한 예방정책 수립·경고·안내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사전탐지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2금융권도 다양한 신종 범죄수법 데이터와 금융보안원의 AI기술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범죄계좌를 지급정지 조치할 수 있다.
금융사–통신사–수사기관 간 업무협조·정보교류 등도 한층 원활히 이뤄질 전망이다. 기존에는 범죄계좌가 확인되고 연관 금융사 계좌가 식별되더라도 전화·FAX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협조 요청을 구해야 했으나 플랫폼이 구축되면 표준화·전산화된 방식으로 손쉽게 정보를 공유,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는 우선 현행법 범위 내에서 정보집중·활용방안을 구체화해 플랫폼을 신속히 가동한다. 또 보다 내실있는 운영을 위해 연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개인정보를 포함한 정보공유 특례를 마련할 예정이다. 알기쉽고 친숙하게 부를 수 있는 플랫폼 명칭 공모도 진행한다.
금융위는 특히 금융사들이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고 피해구제를 할 책임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가상자산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차단, 스미싱에 따른 피해 방지 등 규제를 우회하는 변종 수법 차단 방안도 강구한다. 아울러 구제제도 전반을 소비자 관점에서 재점검해 개선할 방침이다.
권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국가의 제 1역할"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AI·딥페이크 기술·가상자산·스미싱 등 최신 기술을 악용해 발빠르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보이스피싱 같이 범죄수법이 빠르게 진화해 기존 방식으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현장의 고수'의 목소리를 경청해 과감하고 근본적인 조치를 용기있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극적 현장 소통을 바탕으로 과감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플랫폼 구축은 금융위가 구상 중인 여러 방안 중 첫 사례일 뿐"이라며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예방–차단–구제–홍보 각 단계별로 근본적 변화를 이뤄낼 정책과제를 끈질기게 고민해 순차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비롯해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 피해 경험과 현장에서 느낀 애로사항 등을 공유했다.
카드 배송원, 금감원, 검사를 사칭한 조직적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해 2억6000만원 가량의 피해를 입은 A씨는 "조직적 범죄는 개인의 힘만으로 도저히 방지하기가 어렵다"며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충분한 사후구제를 당부했다.
서귀진 전 성남시청 금융전문관은 "신종 범죄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새롭고 근본적인 해법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이스피싱 업무를 담당했던 송재철 농협은행 단양지부장은 "보이스피싱 근절은 통장개설 차단·FDS 등 통합 사전예방, 피해금 환급 등 각 단계별 효과적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절차·규제 범위 등의 효과적 정비, 금융회사 현장 대응인력·물적 체계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뜰폰·1인법인 통장개설 등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길목 차단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충 서울남대문서 수사팀장은 "수표 편취를 통해 금융사의 계좌를 거치지 않고 자금을 탈취하는 범죄유형이 실무적으로 가장 적발·단속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구제를 위한 실무적·행정적 절차가 복잡해 급박한 상황에서 신속한 구제가 쉽지 않아 아쉽다"고 언급했다.
박윤상 서울경찰청 수사팀장은 "악성앱이 설치된 휴대폰 관련정보를 수사당국에서 입수했음에도 법령상 제한 등으로 금융사 등에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운 점이 안타깝다"며 "플랫폼을 통해 정보가 집중·공유되면 범죄를 사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유 금융보안원 팀장은 "AI 플랫폼을 통해 금융-통신-수사 정보가 공유되고 전 금융권·통신사·수사당국 등이 이를 활용하게 되면 범죄 사전방지 효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