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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주거고통][인터뷰]"10년전 하숙비 고수해도 못내는 학생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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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주거고통][인터뷰]"10년전 하숙비 고수해도 못내는 학생 있어요"
  • 천정인 기자
  • 승인 2011.12.12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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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앞서 하숙생 2500명 키운 代母 최필금씨
 

"적어도 학생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은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주거비로 인해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요즘, 25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의 고민을 덜어준 최필금(58·여)씨를 만나 그의 인생 역정을 들어봤다.

최씨는 12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학생들에게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그 꿈을 이룬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이 경남 밀양인 최씨는 배다른 형제까지 포함해 11남매 중 3째로 태어나 가난한 농부의 딸로 자랐다.

하지만 최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컸다.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주경야독'했지만, 배움의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먹고 살기가 막막해 중학교 때 2번 중퇴했고, 야간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했지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며 눈물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옛날 생각에 잠긴 최씨는 "학교 다닐 때 가장 부러웠던 게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를 싸 오는 친구들이었다"며 "그래서 지금도 우리집 하숙생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많이 해 주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밥을 너무 굶은 탓에 끙끙 앓기까지 했던 어린 시절, 최씨는 동네 음식점 옆을 지날 때마다 군침과 함께 서러움을 삼켰다. '나처럼 배고픈 학생들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23세에 상경한 최씨는 낚시터에 밥을 나르거나 재래시장 노점에서 국수를 팔다가 30세가 된 1985년에 고려대 인근에 방 6개짜리 반지하 하숙집을 마련했다.

빚을 내 마련한 하숙집이긴 했지만 하숙생들에게는 밥이든 뭐든 아끼지 않고 줬다. 법대생 10명을 데리고 시작한 이름 없는 하숙집이었지만 곧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하숙집 아줌마가 학생들을 '가족'처럼 대한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것.

그렇게 하숙집을 운영한지 햇수로 25년이 됐다. 건물은 2개로 늘었고, 식당도 하나 따로 생겼다. 하숙생은 어느덧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최씨는 "25년 동안 우리 집을 거쳐 간 학생만 2500명정도 될 것"이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전화로 안부를 묻고 가끔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에도 최씨 집에서 하숙하다 미국으로 유학간 한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에 갈 미국인 친구가 아주머니 집에서 지내고 싶다고 합니다"

특히 최씨의 하숙집이 학생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려운 학생들을 두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최씨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최씨는 15년 전 어느날 한 사법고시 준비생의 바지를 빨다가 엉덩이 부분이 헐어있는 것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바지를 하나 사다줬다.

이 학생은 바지 하나가 그렇게 고마웠는지 몇년 뒤 판사가 돼 첫 월급을 탔다며 양손 가득 속옷 보따리를 싸 들고 찾아왔다. 힘들게 지냈던 시절을 떠올린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동안 펑펑 울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하숙비를 내지 못하는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탓에 하숙비를 내지 않고 사라지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하숙생이 암투병하던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소식에 최씨는 하숙비를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내려주고 밥도 공짜로 먹였다. 그 후 2년간 하숙비를 내지 못한 이 학생은 미안했던지 결국 인사도 없이 홀연히 하숙집을 떠났다.

최씨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 학생 스스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프다"며 "하숙비를 내지 않고 가버린 학생들을 떠올릴 때마다 장학금을 준 셈 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있으면 공짜로 하숙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사실 굴뚝같다"면서도 "그럼에도 하숙비를 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길까봐 걱정돼서"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최씨가 받는 하숙비는 10년전 그대로다.(현재 보증금 300만원, 밥값 포함 월 40만~50만원)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해주는 일이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최씨는 "이제는 일이 힘들어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가끔 있지만 학생들에게 밥 해주는 일을 그만두면 왠지 나 자신에게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우리 하숙집을 '배부르고 편안한 집'으로 만들고 싶다"며 "다시 태어나도 다시 하숙집을 운영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앞으로도 최씨의 하숙생 사랑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씨는 꼬박꼬박 모아온 1억원을 지난해 고려대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했고, 고려대는 운초우선교육관 308호에 '유정 최필금 강의실'이란 이름을 붙여 감사를 표했다.

이밖에도 최씨는 지난 10년 동안 인근 중·고교 소년소녀 가장과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매년 3000만원 상당 장학금과 음식도 기부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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