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7일 오후 3시 현재 포털 사이트 다음의 '실시간 이슈 검색어' 1~10위 모두 '삼성 + XX대'로 도배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은 지난 15일 대학 총장에게 인재 추천권을 부여, 추천권을 받은 학생들은 서류전형 없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볼 수 있는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대학에서 평소 학업과 생활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인재가 우대받을 수 있도록 하고, 현장에서의 인재 발굴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삼성의 새 채용제도는 지역별, 대학별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삼성이 전국 200여 4년제 대학에 통보한 '대학별 할당인원'이 공개되면서 '삼성식 잣대의 대학 서열화'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단이 삼성그룹과 연관된 성균관대가 가장 많은 인원을 할당받았다는 점, 또 영남권 대학이 호남권 대학에 비해 많은 인원을 확보했다는 점, 이공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여대에는 비교적 적게 돌아갔다는 점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등에 따르면 성균관대가 115명의 추천권을 확보해 가장 많은 인원을 할당 받았고 이어 서울대·한양대(각 110명), 연세대·고려대·경북대(각 100명) 순으로 많았다.
여대 중에는 이화여대(30명), 숙명여대(20명), 서울여대·성신여대(각 15명), 동덕여대(13명), 덕성여대(10명) 등이 돌아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 영남권인 경북대와 부산대는 각각 100명, 90명을 할당받은 반면 호남권인 전남대는 40명, 전북대는 30명만 배정받았다.
삼성은 대학 총장 추천제를 통해 연간 5000여명의 인재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삼성이 지난해 채용한 신입사원 규모는 9000여명. 이론상으로는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 대학 총장의 추천을 통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삼성의 총장 추천권에 쏠린 관심은 높을 수 밖에 없다.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아 어떠한 근거로 할당 인원을 정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며 "(추천권 확보 수가)절대적인 경쟁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언론을 접하는 일반 국민과 학부모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 만든 하나의 기준이라고 볼 수도 있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여대 취업지원실 관계자는 "여성 인재 채용을 확대하겠다 해놓고 여대가 이공계에 약하다는 이유로 적게 뽑는다니 당혹스럽다"며 "여기에다 의도치 않게 대학의 서열을 나누게 된 꼴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따르라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해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자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보이콧까지는 이어지지 않겠지만 향후 대책은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삼성의 총장 추천제를 놓고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27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삼성이 대학총장의 채용 추천권을 할당하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가 지속된다면 명문대 서열이 삼성의 할당숫자로 바뀌고, 대학들은 할당 인원을 늘리려고 삼성 로비에 나서는 등 삼성공화국은 더욱 노골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삼성은)임의로 대학 등급까지 매겨 선발 인원을 차등 배정했다. 대놓고 대학을 한 줄로 정렬시킨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자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장 절박한 취업문제를 고리로 대학과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건희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내자'고 역설했는데 그래서 내놓은 방도가 고작 '대학 줄세우기'란 말이냐"라며 "정작 삼성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기업'이라는 국민적 지탄과 비판을 똑똑히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삼성은 이런 반응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높은 성과를 내고 성실하게 일한 기존 입사자 출신 대학 등을 고려해 대학별 할당 기준을 정했다"며 "학교별로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비판이 제기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