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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아들 뼛조각이라도" 5·18행불자 유족의 한맺힌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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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아들 뼛조각이라도" 5·18행불자 유족의 한맺힌 40년
  • 전영규 기자
  • 승인 2020.05.17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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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군 부모 "이제는 맺힌 한을 풀고 싶다"
▲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이창현 군(1980년 5월19일 실종, 당시 양동초 1학년)의 부모가 묏등 없는 묘비를 만지고 있다.
▲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이창현 군(1980년 5월19일 실종, 당시 양동초 1학년)의 부모가 묏등 없는 묘비를 만지고 있다.

"아들 못 찾아 썩어 문드러진 부모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묻은 곳이라도 좀 가르쳐 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귀복(84)씨와 어머니 이금초씨는 주검 없는 빈 무덤 묘비를 붙잡고 가슴앓이를 했다.

1980년 양동초 1학년이었던 이군은 5월 19일 집을 나서 광주역 쪽으로 간 모습이 목격된 뒤 사라졌다.

이씨 부부는 아들의 행방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볐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고이 묻어주고 싶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마르지 않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매 순간이 고비였고 사투(死鬪)였다.

결국 1997년 5월 4일 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 이군의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 뒤에는 '내 아들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씨는 이날 5·18 40주년 추모제 직후 묘비 아래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돌 잔칫날 색동저고리를 입은 이군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불의한 권력이 지휘한 자국 군대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피붙이의 유해라도 찾고 싶은 간절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씨는 "아들이 무척 활발했다.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산이란 산, 주검이란 주검은 다 뒤졌다. 이제는 맺힌 한을 풀고 싶다"고 피울음을 토했다. 

이어 "행불자 유해를 찾는 일은 국가의 책무다.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진상을 낱낱이 밝혀 오월의 아픔을 보듬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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