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금속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중(53·가명)사장은 최근 만기 연장을 위해 A은행에 들렀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2011년 말 운전자금 목적으로 1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7.31%였던 금리가 1년 새 7.72%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김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의 신용등급이 'BBB-'에서 'BB+'로 강등돼 금리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은행은 한 술 더 떠 신용등급 하락에 따라 대출 10%를 상환해 갔다. 김사장은 "요즘 경기가 안 좋아 회사 매출도 떨어졌는데 대출금은 줄고 이자는 올라 답답하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도와줘야 하는데 은행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지만 대형은행들의 대출 문은 오히려 좁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중소기업의 자금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은행에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은행은 중소기업에 26조5000억원의 대출을 해줬다. 지난 2011년 실적인 28조9000억원에 비하면 2조4000억원 줄어든 규모다.
다른 대형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도 한풀 꺾였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6조74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64조7997억원) 1조948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2011년 중소기업 대출 잔액 순증액인 2조8058억원의 70% 수준이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11월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2조5981억원으로 2011년 말(52조2902억원)에 비해 고작 3079억원 늘었다. 2011년 순증액(1조149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아예 감소해 버렸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9조2228억원으로 전년 동기 29조4957억원에 비해 2729억원이나 줄었다. 2011년 1425억원이 증가한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中企 4곳 중 1곳 "자금 필요"…갈수록 대출받긴 더 힘들 듯
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은 늘어나지만 은행들은 대출 문을 쉽게 열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IBK경제연구소가 발표한 '10월 중소제조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현재 자금 사정이 어렵다'고 답한 중소제조업체는 27.7%다. 중소제조업체 4곳 중 1곳 이상은 신속한 대출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4일 한은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 올해 1분기(1~3월) 중소기업 대출수요지수 전망치는 16으로 지난해 4분기(10~12월) 13에서 3포인트 높아졌다.
중소기업의 대출수요 증가세가 다소 확대되고 특히 영업활동에 의한 현금창출능력이 떨어지는 업체를 중심으로 운전자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은은 내다봤다.

국내은행의 올해 1분기 중소기업 대출 태도지수는 -2로 전망됐다. 이는 지난해 4분기(2)보다 4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지난 2008년 4분기(-28) 이후 최저치다.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신용위험지수 역시 1분기 31로 전망돼 2009년 2분기(4~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김용선 한국은행 거시건전성분석국 조기경보팀장은 "은행들이 중소기업의 신용 위험도를 높게 보고 있어 올해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中企대통령' 약속한 朴당선인…금융당국도 발 맞춰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방문에 앞서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지원 확대를 시사했다.
박 당선인은 "중산층을 70%로 올리겠다는 것은 바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이 중심이 된 이야기"라며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인이 잘돼야 한다.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도 금융권에 중소기업 지원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파이의 크기만 중요시하는 양적 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금융애로를 해소하는 등 질적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사회가 기대하는 금융의 사회적 책임 수행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 달성을 위해서는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가계와 기업의 부실이 확산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