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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집중]원高에 달러마저 홍수…수출기업 갈수록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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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집중]원高에 달러마저 홍수…수출기업 갈수록 한숨
  • 이국현 기자
  • 승인 2012.12.1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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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9월 5만 달러짜리 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두 달 사이에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서 500만원 가까이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보통 수출할 때 30%는 예치해놓고, 나머지 70%는 발송전에 결제하는데 환율이 하락하면 환차손이 불가피합니다"

패션 쥬얼리를 제조해서 수출하는 A업체는 내년 손익분기점을 어디에 둘 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지난해 중반 올해 예상 환율을 1050원에 맞춰놓고 업체에 할인을 해주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데, 최근 들어 1050원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A업체 해외시장팀 관계자는 "내년에는 1000원까지도 예상하고 있다"며 "환율이 계속 하락하면 결국 수출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2. 대구에서 안경을 수출하는 B업체 수출담당 과장은 최근 위젯을 켜놓고 수시로 환율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업체는 유럽과 미국, 동남아, 남미, 일본 등에 수출을 하고 있다. 달러화와 엔화 비중을 반반 정도인데 요즘에는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이 모두 내려가면서 손을 못쓰고 있다.

"예전에는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원·엔 환율이 올라서 상쇄가 됐는데 요즘에는 둘 다 떨어지면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생산기지가 해외에 있거나 환 헤지를 해놓았기 때문에 그나마 사정이 낫다지만 종업원이 10명도 안 되는 저희 같은 경우는 고스란히 손해가 납니다"

현재 B기업의 환율 마지노선은 1050원이다. 이 관계자는 "적어도 6개월 전에는 환율 전망을 하고 대응을 해야 하는데 올해 하반기에는 9월부터 급락하면서 대응이 너무 늦었다"며 "환율 하락에 더해 미국과 유럽 쪽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수출이 동시에 줄고 있어 더 큰 걱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美양적완화 후 달러 더 풀린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선진국들이 잇따라 금융완화를 시행하면서 시중에 달러가 넘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2일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내년 1월부터 매달 45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추가로 매입키로 했다. 앞서 지난 9월14일에는 3차 양적완화(QE3)를 통해 매달 400억 달러 상당의 주택담보부채권(MBS)을 매입키로 했다.

3차 양적완화에 이어 미 달러 공급 확대가 추가로 결정되자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원화 강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9월14일 양적완화 발표 이후 원·달러 환율은 1117.20원에서 지난 14일 1074.30원으로 3.4% 절상됐다. QE3 이후 원화 절상폭은 28개국 통화 가운데 가장 컸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경기 둔화에도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데다 신용등급까지 상승하면서 아시아 다른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달러가 유입되고 있다"며 "내년에는 연초 이후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인한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통화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올 들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도 달러 유입을 부추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9개월째 흑자 행진을 기록하면서 누적 경상수지가 10월 말 현재 341억3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한은의 연간 예상치(340억 달러)를 넘는 수치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 표시 자산의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주식 및 채권시장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아시아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는 점도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내년에도 원화 강세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내년에는 1035원, 2014년에는 990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평균 환율이 1070원, 연말에는 1030원까지 내려가면서 2014년에는 1000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내년에 1080원을 점쳤다.

관건은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환율 하락속도가 가속화될 지다. 외환당국은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축소한 데 이어 2단계로 규제시점을 월간에서 일별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민구 유진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양적완화(QE4) 조치가 원·달러 환율의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정책당국의 원화 강세 억제를 위한 추가 개입 조치가 예상되지만 단지 미세 조정 차원의 개입일 뿐 강세 추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일축했다.

◇엔화 절하폭 28개국 중 최대

엔화 가치 하락도 심상치 않다. 원화 강세와 맞물리면서 원·엔 환율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원·엔 환율 올해 초(1월10일) 100엔당 1514.64원까지 올랐지만 3차 양적완화 발표(9월14일) 당시 1453.63원에서 지난 12월14일 1282.35원으로 하락했다. QE3 이후 원화 가치가 엔화보다 13.4% 절상됐다.

내년에도 엔화 약세가 불가피하다. 글로벌 불안심리가 다소 완화되면서 안전자산으로 엔화 선호가 줄어든 데다 오는 16일 총선에서 집권이 유력한 아베신조 자민당 총재가 "집권 시 50조엔 규모의 경기 부양과 무제한 양적완화 등 강력한 부양책을 펼치겠다"고 밝히면서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짐 오닐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칼럼을 통해 엔화 약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출 감소와 막대한 정부 부채를 비롯해 국내 경제의 개혁이 더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화 환율이 과대평가 됐다"며 "과거 엔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주된 이유들이 반대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전망했다.

◇수출기업 이중고…가격보다 제품경쟁력 높여야

원화 강세에, 엔화 약세까지 수출기업들은 환율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시장에 수출하는 기업이나 미국 시장에 수출하더라도 일본제품과 경쟁하는 기업들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며 "일본은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우리 기업은 원화 강세를 보이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말했다.

특히 달러화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문제다.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은 해외 현지생산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 변동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줄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LCD TV, 조선 등은 가격을 올리더라도 제품 경쟁력이 있어 영향을 덜 받는다.

반면 중소업체들이 환 헤지를 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예측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생산공장이 대부분 몰려 있고, 제품경쟁력도 대기업에 못미친다. 결국 적절한 헤징을 하지 못할 경우 환율 변동이 심할 때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더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신 연구원은 "원화 절상에도 수출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비용을 절감하거나 가격을 올려도 수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정부의 환변동보험을 활용한다든 지 과거 일본처럼 해외생산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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