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책임질 '운명의 날'이 2주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와 가계부채, 불투명한 대외 경제상황을 극복할 어떤해법을 갖고 있을까.
박 후보와 문 후보는 모두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금산분리를 강화하며 일감 몰아주기를 제한하는 한편 상생과 공정거래를 추진해야 한다는 '경제 민주화' 정책을 내걸고 있다. 때문에 재벌의 불법행위 처벌 강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등에 대해 큰 틀에서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각론을 살펴보면 상당한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가 '온건론'이라면,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강경론'에 가깝다. 순환출자 규제와 출자총액제한제 등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공약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온건' 박근혜 '신규 순환출자만 규제'…출총제는 반대
박 후보는 자신의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기'를 추진 원칙 중 하나로 내세웠다. 또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 ▲대기업집단 불법행위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엄중 대처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5대 분야로 꼽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재벌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한 '순환출자제'와 관련,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 출자만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가 최근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꼽혀 오던 대기업집단법은 제외됐다. 박 후보는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박 후보는 순환출자와 관련, "우리 기업이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고 지금 어려운 시점에 합법적으로 인정되던 과거의 의결권까지 제한한다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과거의 것은 인정하되 새로운 순환출자는 금지하는 것이 지금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대기업집단법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선례가 거의 없고 현행 법체계와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따라서 집단법에 포함될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은 개별법에 실효성 있게 반영하고 집단법 제정 논의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셈이다.
◇'강경' 문재인, 순환출자 제한·출총제 재도입
문재인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방점을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강도 높은 재벌개혁'에 찍으며 재벌 소유의 지배구조 개혁을 예고했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 방안이 담긴 '경제민주화 구상 2탄'에 따르면 그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물론이고, 기존 출자분까지도 3년의 유예기간을 둬 모두 해소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문 후보는 특히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대기업 집단에 대해 순자산의 30%까지 출자총액제한제를 재도입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문 후보는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상한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고, 자회사·손자회사의 최저지분 보유율을 현행 20%(상장사)와 40%(비상장사)에서 각각 30%, 50%로 올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밖에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내부거래 과징금 부과 ▲기업범죄 사면권 제한 ▲대기업 담합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 등도 문 후보가 발표한 재벌 규제 정책이다.
문 후보는 "재벌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에 많이 기여했지만 지금은 재벌이 경제민주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술이 어려운 중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면 당장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생명을 잃게 되며, 경제민주화만이 늘 되풀이되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文, 기업 옥죈다고 서민 사는 것 아냐" vs "朴, 경제민주화 진정성 의심"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재벌 규제 정책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이철행 기업경제팀장은 정치권의 재벌개혁 공약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상대적으로 박 후보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김한기 경제정책팀장은 박 후보의 진정성에 의문을 나타내며 문 후보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
동반성장연구소 박동현 연구위원은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정책이 '중산층 보호'라는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서민과 상관없는 정견대립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철행 전경련 기업경제팀장은 "투자가 줄고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힘쓸 수 있겠느냐"며 "기업을 옥죄서 얻는 이익이 서민과 중소기업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폐쇄된 경제라면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릴 정책이 되겠지만 한국은 현재 열려있는 경제"라며 "대기업이 공공기관 조달 사업 등에 제한을 받았는데, 그 이익은 대부분 국내 중소기업을 인수한 외국계 기업 등으로 갔다"고 지적했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박 후보의 정책과 관련, "기존 재벌 총수들이 소수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공고히해온 것이 '순환출자'인데 박 후보가 기존의 순환출자를 인정하겠다는 것은 재벌 기득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정책의 진정성, 개혁성에 대해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후보의 정책에 대해서는 "출총제 재도입 등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하며 상당히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도 "재벌과 관련해 미진한 방법을 어떻게 추진할 지에 대한 실현 방법과 세부 방안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박동현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은 "박 후보의 공약은 초기 경제민주화에 대한 견해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성' 문제가 있고, 문 후보의 공약은 로드맵과 구체적인 실현방법이 모호하다"며 "특히 문 후보의 경우 안 후보와의 단일화 후 정책이 재정립되지 않아 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여야가 모두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서민 생활 안정과 중산층 보호를 위해 시작한 정책이 일반 시민과 아무 상관없는 정견대립으로 흐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민생경제는 업고 정책경제 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 경제민주화론의 허울"이라고 지적했다.